사용자 편의성과 비즈니스 모델 확보 사이의 충돌

적게는 수십 명부터 많게는 수천 명이 실시간으로 대화하는 채팅방에서 잠깐 한눈을 판 사이 수백 개의 메시지가 쌓여 대화의 맥락을 놓치거나, 타 유저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어본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조금만 지나도 빠르게 올라가버린 채팅으로 인해 이야기하고 싶어도 이미 지나가 버린 화제를 다시 꺼내기가 망설여지기도 하죠. 그런데 최근 카카오톡이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조용히, ‘잠수함 업데이트’를 단행했습니다.
기존 답장 기능을 넘어, 대화의 맥락을 더욱 쉽게 파악하고 따라갈 수 있도록 해주는 ‘댓글’ 기능을 포함한 오픈채팅 개편 업데이트를 진행한 것인데요. 기능 자체만 보면 불편함을 해소하는 신기능으로 사용자들에게 환영받아 마땅한 업데이트이지만 반응이 묘하게 싸늘합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사용자의 과업 수행 및 사용자 경험을 플랫폼의 비즈니스 로직이 구조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점에서, 작년 9월 사용자의 거센 반발을 불렀던 대규모 업데이트와 같은 유형의 문제의 업데이트라고 지적합니다.
과연 이번 카카오톡 오픈채팅 개편에는 어떤 의도와 문제가 자리 잡고 있을까요? 이번 글에선 카카오톡의 최신 오픈채팅 개편 업데이트에 대해 짚어봅니다.
대화의 맥락 확보하는 ‘댓글’ 기능

먼저, 이번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 적용된 ‘댓글’ 기능이란 무엇일까요? 기존 ‘답장’ 기능이 지나간 원본 메시지를 인용해 채팅방의 최신 메시지를 작성함으로써 과거의 대화를 현재로 소환하는 방식의 기능이었다면, 이번에 도입된 댓글 기능은 슬랙(Slack), 디스코드(Discord) 사용자라면 익숙할 기능입니다. 특정 메시지를 클릭해 댓글을 달면, 메시지에 댓글이 달리는 동시에 메시지에 달린 댓글을 모아두는 별개의 페이지가 추가 생성돼 메인 채팅방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형태죠.
또한 기존 답장 기능이 단순 텍스트나 이모티콘만 입력이 가능한 것과 다르게, 댓글의 경우 사진, 동영상, 음성 메시지, 파일 등 각종 멀티미디어 전송까지 가능해져 소통의 표현력과 실무 활용도도 대폭 강화되었습니다.
하나의 채팅방에서 여러 주제의 이야기가 오가야 하는 협업 툴이나, 사용자 숫자가 굉장히 많은 커뮤니티 서비스에서 주로 사용되는 이런 댓글 기반의 소통 방식은 해외에서도 ‘스레드(Threads)’라고 불리는 대표적인 UI·UX 디자인 패턴입니다. 이 스레드 기능은 메인 대화창과 하위 대화창을 시각적으로 분리해 수많은 메시지와 대화가 오가는 환경에서도 사용자가 대화 흐름과 맥락을 잃지 않도록 돕기에 국내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기능이 됐는데요.
스레드 기능을 사용하는 메신저의 대표주자이자 글로벌 협업 툴인 슬랙의 디자인 팀은 이 스레드 기능의 장점을 ‘채널의 소음 감소’와 ‘대화의 맥락’유지로 꼽습니다. 실제 슬랙은 공식 개발 블로그를 통해 “다양한 대화가 동시에 진행될 때 채팅방이 혼란스러워질 수 있다”며 “바쁜 채팅방에서 어떻게 대화를 그룹화하고, 누가 어떤 메시지에 답장했는지 명확히 알 수 있을까? 우리는 스레드 기능을 사용자에게 대화의 맥락을 제공하는 수단으로 보았다”고 밝혔죠.

이처럼 댓글 기능은 많은 사용자가 몰리거나, 많은 이야기가 발생하는 환경에서 대화의 맥락과 흐름을 시각적으로 구분해 메신저가 필연적으로 겪는 정보 과부화 및 대화 흐름 마비 현상을 해결해 주는 장치라 볼 수 있습니다.
카카오톡 역시 댓글 기능 도입에 대해 같은 설명을 제시했는데요. 카카오 관계자는 “관심 주제에 대한 흐름을 놓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도록 기존 ‘오픈채팅 커뮤니티’에만 적용되던 댓글 기능을 일반 오픈채팅방에도 확대 적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내 오픈채팅방 목록을 가려버린 ‘더보기’ 버튼

하지만 상술했듯 이번 오픈채팅 개편 업데이트에 대한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습니다. 오픈채팅방에 댓글 기능이 추가된 것으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인데요. 사용자의 불만이 터져 나온 주된 지점은 바로 ‘목록 화면’과 ‘알림’입니다.
우선 카카오는 이번 업데이트에서 가입된 오픈채팅방을 보여주는 지금 탭의 ‘내 채팅방’ 목록 화면을 개편했습니다. 업데이트 이후 참여 중인 오픈채팅방이 4개 이상일 경우 목록이 자동으로 접히게 되고, 나머지 채팅방은 ‘오픈채팅 더보기’ 버튼을 눌러야 표시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확보한 공간엔 그동안 스크롤 최하단에 위치해 기본 상태에선 보이지 않던 ‘오픈채팅 커뮤니티’ ‘인기 많은 방’추천 등이 노출됩니다.
그 결과 기존에는 오픈채팅방 중간이나 하단에 배치되던 광고 및 추천 채팅방이 전면에 드러나게 됐는데요. 이 같은 UI 업데이트는 사용자 개인의 영역을 물리적으로 축소시키고 플랫폼 비즈니스를 위한 영역을 강제로 확장했다는 인상은 준 것은 물론, 오픈채팅방 목록에 접근하기 위한 추가적인 행동을 요구함으로써 사용자의 불만을 유발했습니다.

UX 디자인 관점에서 이런 업데이트는 사용자의 목적 지향성 행동을 방해하고, 종합적인 사용자 경험을 저해하는 요소입니다. 내 채팅방을 찾기 위해 접힌 목록을 펼쳐야 하는 뎁스가 추가되고, 중복된 알림은 사용자가 알림 확인 클릭이라는 중복 활동을 요구해 피로도를 높이기 때문이죠.
이에 대해 한 UX 디자이너는 “댓글 기능이 사용자의 ‘소통 경험’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었다면, 탭 개편은 철저히 체류 시간 증대와 트래픽 확산을 위한 ‘비즈니스 경험’ 설계로 보인다”며 “두 가지 상반된 목적의 업데이트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사용자는 기능적 편리함보다는 공간을 뺏겼다는 박탈감을 더 크게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이런 유형의 디자인은 기피해야 할 주요 예시로 꼽히는데요. 특히 NN그룹은 이번 접힙 버튼과 같은 기능을 ‘아코디언 메뉴’ 라고 부르며, “사용자들은 클릭을 화폐처럼 생각한다. 몇 번의 헛된 클릭만으로도 사용자들의 반발은 극에 달할 수 있다”며 “링크나 버튼과 같은 클릭 대상을 찾고, 콘텐츠가 표시되길 기다리는 작업은 번거로울 뿐만 아니라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며, 사용자들은 소중한 시간을 낭비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아코디언 메뉴 기능 남용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공해 수준인 오픈채팅방 ‘댓글 알림’

여기에 더해 새로운 댓글 시스템의 등장이 알림 폭격으로 이어졌다는 불만의 목소리도 나옵니다. 현재 구조상 내 메시지에 댓글이 달리면 채팅방 내부 인디케이터, 오픈채팅방 목록, 댓글 모아보기 알림 센터까지 총 3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중복 알림’이 발생합니다. 심지어 오픈채팅방에 들어가 댓글을 읽어도, 인디케이터나 댓글 모아보기의 알림 표시는 사라지지 않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3번이나 반복해서 오픈채팅방에 진입해야 하는데요.
사용자를 여러 번 채팅방에 진입하게 만드는 만큼 앱 서비스 제공자 입장에서는 좋아 보일 수 있지만 사용자의 집중력을 소모시키는 ‘소음’이자 ‘공해’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사용자는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알림 표시를 해소하기 위해 원치 않는 확인 작업을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죠.


때문에 국내외 많은 디자인 전문가들은 물론, 운영체제나 스토어를 소유한 플랫폼 홀더(Platform Holder)들조차 이런 중복 알림에 대해 경고하고 있는데요. 특히 애플의 경우, 휴먼 인터페이스 가이드라인을 통해 “동일한 사항에 대해 중복 알림을 보내지 말 것”이라고 명시하며 “중복 메시지가 사용자의 알림 센터를 가득 채우면 사용자는 해당 앱의 모든 알림을 꺼버릴 수 있다”고 강력히 경고하고 있죠.
실제 이런 경고를 무시하고 진행된 이번 업데이트 이후, 구글 플레이스토어/애플 앱스토어 상점의 카카오톡 페이지에선 “댓글 하나 달릴 때마다 알림이 세 번이나 보인다” “댓글 알림만 끄는 기능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업데이트 이전보다 불편하다” 등 중복 알림의 피로도를 호소하는 내용이 줄을 잇습니다.
카카오톡은 왜 오픈채팅을 업데이트 했을까?

디자인이 좋든 나쁘든,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카카오톡이 오픈채팅 개편을 통해 기존 오픈채팅방 경험을 강화하려 한다는 것인데요. 실제 오픈채팅방에 도입된 댓글 기능은 더욱 쉽고 오랫동안 다양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는 것이 목적이며, 추천 오픈채팅방은 새로운 채팅방으로의 유입 통로가 되고, 수많은 알림은 강제적이라도 기존 채팅방에 자주 들어갈 수밖에 없게 만듭니다.
그렇다면 카카오톡은 왜 오픈채팅방 경험을 강화하고자 하는 것일까요? 전문가들은 카카오톡의 이런 움직임이 “성장 기반이 한계에 봉착하고, 내수 시장 및 경쟁 포화로 인한 수익성 둔화가 관측되고 있는 상황 속 카카오톡의 새로운 생존 전략일 것”이라고 말합니다. 요컨대 사용자의 체류시간과 사용량 증대를 위한 수단으로 커뮤니티 전략을 선택하고, 이를 위해 오픈채팅 기능 강화에 나섰다는 이야기인데요.
실제 디지털 마케팅 버티컬 플랫폼 아이보스는 이번 업데이트와 함께 이뤄진 오픈채팅방 참여 인원 상향 조정을 두고 “이는 카카오가 오픈채팅을 ‘관심사 기반 커뮤니티’로 명확히 정의했음을 보여준다. 지인 간의 가벼운 대화인 일반 채팅방은 기존 방식을 유지하되, 대규모 인원이 모이는 오픈채팅에는 전문적인 소통 구조를 도입해 ‘슈퍼 앱’으로서의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전략이다”라고 말하면서 슈퍼 앱들과의 경쟁력 확보로 커뮤니티 전략을 선택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이는 작년 9월 “카카오톡을 지난 15년간의 (메시징)목적형 서비스에서 사용자가 더 오래 머무는 ‘체류형 서비스’로 확장하겠다”는 홍민택 카카오 CPO의 발언과 오픈채팅탭을 ‘지금탭’으로 개편하며 숏폼과 콘텐츠, 실시간 커뮤니티 대화를 동시에 즐기도록 만들겠다는 카카오톡의 전략 발표와 일맥상통한 분석이기도 합니다.

작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아야

결국 이번 카카오톡 오픈채팅 업데이트에 대한 반발은 사용자 편의성과 비즈니스 모델 확보라는 두 가지 핵심 요소가 정면으로 충돌한 결과입니다. 결과적으로 지난 9월 단행됐다가 수많은 사용자들의 반발과 손실을 불러온 카카오톡 25.8.0 업데이트와 같은 유형의 문제인 것이죠.
실제 여러 언론 매체는 “체류시간 증가를 통한 수익성 확보와 이용 편의성 유지 사이의 균형을 시험하는 국면” “실제 사용자들이 변화를 필요로 하는지, 그리고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검증 부족”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라고 진단했는데요.
댓글 기능을 통한 ‘사용자 대화 맥락 확보 지원’이라는 가치를 제공하려 건 분명 긍정적인 모습입니다. 하지만 그 긍정적 변화가 “추천과 광고를 위해 내 채팅방 목록이 접혀져야 한다”거나 “쏟아지는 중복 알림에 시달려야 한다”는 부정적 경험과 함께 이뤄진다면, 이는 플랫폼에 대한 피로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작년과 동일하게 카카오톡이 풀어야 할 숙제는 명확합니다. 사용자가 ‘내 경험’과 ‘내 공간’을 침해받지 않는다고 느끼면서도, 자연스럽게 새로운 기능 및 커뮤니티를 탐색할 수 있는 균형점을 찾는 것이죠. 급격하고 과도한 변화로 인해 신기능 뒤에 숨겨진 비즈니스적 계산이 사용자의 신뢰를 깎아먹지 않도록, 기술과 사용자 경험에도 세밀한 배려가 필요한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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