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취향 세분화되고 있어… 비즈니스 전환 능력 필요

경기 불황이 지속되면서 소비자를 설득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국내 대표 마케팅 총괄들은 지금 같은 상황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을까요?
지난달 말 열린 부산국제마케팅광고제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CMO in Flux: 변화의 파도를 타는 리더의 시선’ 세션에는 티빙과 아워홈, 쏘카의 마케팅 총괄(CMO)이 모여 현 시대 소비자 메가 트렌드와 그에 따른 CMO의 역할 변화, 퍼포먼스 마케팅과 브랜딩의 균형 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들은 “경기 불황이 지속되는 가운데 소비자 취향마저 빠르게 바뀌면서 고려해야 할 것이 더 많아졌다”며 스스로의 역할을 “비즈니스 관점을 기반으로 각 직무를 통합·조율하는 것”으로 재정의, 불황의 시대에 대응해나가고 있었습니다.
쉽게 들을 수 없는 CMO의 대화를 주요 키워드 중심으로 정리했습니다.
소비 트렌드: 경기 불황과 취향의 세분화
연사로 나선 3인의 CMO 모두 소비 트렌드가 과거와 크게 달라졌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특히 경기 불황 여파로 소비자의 지갑이 닫혔다는 점과 ‘옴니보어’로 대표되는 취향의 세분화를 2025년의 주요 흐름으로 지목했습니다.

국산 1위 OTT 플랫폼 티빙의 서권석 CMO는 고객의 콘텐츠 소비 맥락이 다양해졌다는 점을 가장 큰 변화로 꼽으며 “각각의 소비 패턴에 맞춘 콘텐츠 기획 및 노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티빙 앱에 접속해 시청하는 고객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누구는 숏폼으로, 누구는 TV로, 누구는 오프라인 환경에서, 누구는 지인과 함께 소비하곤 합니다. 콘텐츠마다 타깃은 물론, 소비되는 방식까지 다르다는 뜻이죠. 때문에 다양한 고객 여정을 분석, 개인화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저희 같은 미디어 기반 플랫폼은 정형화되지 않은, 정말 다양한 취향의 소비 패턴에 맞춰 마케팅 활동을 해야 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권석 티빙 CMO

복합몰부터 급식, HMR(간편가정식)에 이르는 종합 F&B 사업을 영위 중인 아워홈의 전준범 CMO는 “F&B 분야에서 가장 체감되는 변화는 소비자의 취향이 세분화됐다는 점”이라며 ‘장기집권’ 스테디셀러가 나타나기 어려워졌다고 했습니다.
“경기가 어려워져도 먹는 것에 대한 소비는 줄지 않기 때문에 급식이나 HMR 제품에서 ‘가성비’를 내세운 기회 요인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다만, 소비자의 취향이 너무 세분화됐기 때문에 그만큼 경쟁이 치열해졌다는 점은 도전 과제입니다. 편의점을 예로 들면, 예전에는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의 주기가 1~2년은 됐는데요. 이젠 그 주기가 4~6개월로 줄어들었습니다. 제품 기획 및 운영 전략이 달라져야 한다는 뜻이죠. F&B 기업 차원에서 소비자 취향에 대응하기 시작하면 이런 흐름은 더욱 가속화될 겁니다.“
전준범 아워홈 CMO

국내 최대 카셰어링 플랫폼에서 종합 모빌리티 플랫폼으로 변모 중인 쏘카의 조준형 CMO는 “소비자의 구매 활동 자체가 줄었다”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소비자의 ‘인정 욕구’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흥미로운 관점을 제시했습니다.
“요즘 젊은 소비자를 꿰뚫는 정서는 인정 욕구라고 생각해요. 취업 시장은 물론, 직장에서도 인정받기 어려운 현실이에요. 연애나 결혼은 말할 것도 없죠. 이런 분위기가 전부 소비 심리에 영향을 미치거든요. 실제 요즘 구매 패턴을 보면 ‘원츠(Wants)’보다 ‘니즈(Needs)’에 따른 구매가 월등히 높은 편이에요. 이런 팍팍한 분위기에선 브랜드가 나서서 격려해주고, 소비자끼리 연결해서 좋은 의견을 주고 받도록 해 인정 욕구를 충족시키는 일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최근 저희도 이런 류의 캠페인에 집중하고 있고요.”
조준형 쏘카 CMO
퍼포먼스와 브랜딩 구분하는 건 옛말
마케팅 업계의 뜨거운 감자인 퍼포먼스 마케팅과 브랜딩(브랜드 마케팅)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습니다. 마케팅 방법론의 큰 두 축인 퍼포먼스 마케팅과 브랜딩은 각각 캠페인 성과 효율화와 브랜드 자산 구축에 목적을 둡니다.
기업의 마케팅 예산이 한정돼 있는 만큼, 지표를 숫자로 확인하고 즉각적인 비즈니스 임팩트를 가져다 준다는 점에서 퍼포먼스 마케팅은 지난 10년 간 국내 마케팅 업계의 대세로 자리잡았는데요.
이런 철옹성 같던 ‘퍼포먼스 만능론’에 금이 가고 있는 것이 최근 마케팅 업계 분위기입니다. 예전만큼 비용 효율을 내지 못하는 데다, 단기적 성과 중심의 접근 방식이 기존 브랜드 자산과 충돌을 일으키는 경우가 늘고 있는 탓입니다.
이에 퍼포먼스 마케팅과 브랜딩 사이의 균형은 마케터 사이의 큰 화두인데요. 3인의 CMO는 모두 입을 모아 “두 마케팅 방법론을 통합해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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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준범 아워홈 CMO는 “둘 중 하나만 집중하면 비즈니스 측면에서 놓치는 것이 많다”며 “퍼포먼스 마케팅과 브랜딩 사이에 경계를 두지 않으려 노력한다”고 했습니다.
“저도 얼마 전까지는 퍼포먼스 마케팅을 맹신하다시피 했어요. 하지만 소비자 경험과 기업의 중장기적 측면에서 단점이 존재하더군요. 게다가 요즘 소비자는 너무 많은 광고에 시달린 나머지 브랜드 메시지에 대한 집중력이 떨어진 상황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퍼포먼스 마케팅을 통한 정량적 데이터와 브랜딩을 통한 인지도 및 마인드셰어 같은 부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탄력적인 방식으로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모든 마케팅 활동에 대한 정량적인 근거를 찾아내려는 시도도 함께 하고 있고요.”
전준범 아워홈 CMO
같은 이유로 서권석 티빙 CMO가 가장 먼저 착수한 일도 퍼포먼스, 브랜딩, CRM 등 기능 중심으로 나뉘어져 있던 마케팅 조직 구조를 개편하는 작업이었습니다.
“조직이 역할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보니, 회사의 큰 방향성을 잊은 채 각자의 KPI에만 매몰돼 일한다는 문제가 있었어요. 때문에 마케터들이 서로 연결되고 시너지를 낼 수 있는 구조로 개편하는 데 노력했습니다. 필요하다면 브랜드 마케터도 퍼포먼스를 할 수 있고, 퍼포먼스 마케터도 브랜딩을 고민할 수 있도록 말이죠.”
서권석 티빙 CMO

그럼에도 퍼포먼스 마케팅이 담보하는 ‘성과의 열매’는 유혹적일 수밖에 없는데요. 조준형 쏘카 CMO는 퍼포먼스 관점에서 브랜딩의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두 마케팅 방법론은 상호보완적이며 “반드시 병행해야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브랜딩이란 인지도와 선호도를 높여 특정 구매 상황에 우리 브랜드를 꽂아 넣는 것이고, 퍼포먼스 마케팅은 구매전환을 즉시 높이는 활동이에요. 이 두 가지는 상호보완적입니다. 많은 기업이 퍼포먼스 마케팅에만 예산을 집중하는데, 사실 브랜딩이 받쳐줘야 효과가 극대화돼요.
예컨대, 쏘카는 퍼포먼스 마케팅에 더 집중하고 있지만 매월 브랜딩에도 꾸준히 예산을 투입합니다. 일부에선 브랜딩에 쓴 돈이 나중에 회수되는 게 맞냐 의문을 표하기도 하지만요. 실제 연구에 따르면, 동일한 퍼포먼스 마케팅을 진행해도 브랜딩을 병행했을 때 그 효과가 더 큰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지도라는 자산이 쌓였기 때문이죠. 그러니 이 두 가지는 반드시 함께 진행해야 한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조준형 쏘카 CMO
요즘 CMO ‘비즈니스 전환’ 이끌어내야
이처럼 기존의 마케팅 문법이 바뀌는 시대, CMO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커지고 있습니다. 기업 상황에 따라 구체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비즈니스 관점’을 지닌 CMO가 되어야 한다는 데는 의견이 모였습니다.

서권석 티빙 CMO는 자신의 역할을 제품과 임직원, 고객 사이에서 브랜드의 메시지를 온전하게 전달하는 ‘통번역가’에 비유했습니다.
“CMO는 더 이상 마케팅 커뮤니케이션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고객에게 우리 제품과 브랜드 메시지를 온전히 전달하는 사람, 즉 번역가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한 구조를 설계하고, 각 팀의 업무를 조율해 비즈니스 전환을 만들어내는 것이 현재 CMO로서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서권석 티빙 CMO

전준범 아워홈 CMO도 비즈니스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앞으로 CMO는 밸류 크리에이터가 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과거 CMO가 단순한 마케팅 관리자였다면 지금은 비즈니스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로 바뀌었어요. 회사의 전략적 방향 내에서 마케팅과 브랜딩, 디자인, 신제품 기획 등의 경계를 허물고 그 안에서 종합적인 시너지를 이끌어 내는 ‘지휘자’ 같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준범 아워홈 CMO
마케팅이 비즈니스 솔루션이 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준형 쏘카 CMO는 소비자의 정서를 꿰뚫는 인사이트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고 전했습니다.
“앞서 요즘 소비자를 관통하는 정서가 인정 욕구라는 말씀을 드렸는데요. 이처럼 이 시대의 CMO는 소비자가 가진 정서를 파악하는 통찰력을 갖추고, 이를 마케팅 활동에 반영해 소비자를 사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준형 쏘카 CMO
젊은 마케터도 ‘비즈니스 마케터’ 지향해야

마지막으로 이들 CMO는 행사장을 찾은 젊은 마케터들에게 다양한 경험을 기반으로 비즈니스 전환을 만들어낼 수 있는 마케터로 성장하기를 당부했습니다.
서권석 티빙 CMO는 “마케팅 종말의 시대라는 말도 나오지만 오히려 마케터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졌다고 생각한다”며 “지금 같은 혼란의 시기에 마케터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생태계 구조에서 전환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여러분도 시장의 흐름을 잘 타고 실질적인 변화를 만들어내는 비즈니스 마케터로의 삶을 지향하길 바란다”고 했습니다.
전준범 아워홈 CMO도 “마케터는 절대 예술가가 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하며 “그간 마케팅, 전략 기획, 투자 등 다양한 포지션을 경험했다. 마케터로서 영향력을 넓혀가려면 비즈니스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런 관점에서 비즈니스 이해도를 높이기 위해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보시면 좋겠다”고 전했습니다.
조준형 쏘카 CMO는 “힘이 빠지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언젠가 저희를 비롯해 여기 계신 마케터 모두가 회사에서 잘릴 것”이라며 “그러니 홀로서기를 준비하며 커리어를 쌓아나가길 바란다. 계획이 뚜렷하지 않아도 좋으니 ‘나중에 회사를 나와 이런 사업을 해봐야겠다’ 하는 일을 지금부터라도 보듬어 나가기를 권한다”고 조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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