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나라에서도 익숙한 ‘패밀리 레스토랑’이라는 단어는 사실 찐 영어도 아니고 일본에서 만든 단어랍니다. 영어권에선 ‘캐주얼 다이닝’이라고 부르죠. 대략 분식집이나 경양식 식당보다는 비싸고 격식 있는 레스토랑보다는 저렴한, 격식을 차리지 않고 풍성한 양을 제공하는 서양식 레스토랑을 뜻합니다. 우리나라에도 한때 미국의 프랜차이즈가 많이 들어왔지만, 차별화의 어려움과 물가 상승, 배달 서비스 및 밀키트의 발달로 지금은 빕스나 아웃백 정도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캐주얼 다이닝의 포지션은 애매합니다. 패스트푸드보다는 비싸고 격식 있는 레스토랑보다는 저렴한데, 대중적이지만 브랜드 파워가 선명하지 않죠. 실제로 후터스, TGI 프라이데이 같은 한국에도 알려진 체인들이 줄줄이 파산 신청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홀로 날아오르고 있는 브랜드가 있습니다. 1975년에 시작된 텍스-멕스 캐주얼 다이닝인 칠리스(Chili’s)입니다.이 오래된 브랜드가 갑자기 3분기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고 최근 분기 매출만도 31% 증가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1️⃣ 가성비는 설명하는 게 아니라 보여주는 것

칠리스 반등의 출발점에는 ‘3 for Me’가 있습니다. 스타터, 메인, 음료를 $10.99부터 묶어 제공하는 세트 메뉴로, 2022년 도입 이후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도 가격을 유지했습니다. 쿠폰도 없고, 앱도 없고, 조건도 없는 이 ‘단순하고 공정한 딜’은 고객들에게 자연스럽게 각인됐습니다.

여기에 내부 정비도 병행했습니다. 메뉴를 과감히 줄이고 버거, 파히타, 립 등 핵심 카테고리에만 집중했죠. CEO 인터뷰에 따르면 시즈닝 셰이커의 구멍 크기를 키워 조리 횟수를 줄이는 세부 공정까지 손을 댔을 정도입니다.
소소해 보이지만, 이런 개선들이 쌓여 서비스 속도와 고객 경험이 올라갔습니다. 메뉴가 줄어드니 주방이 빨라지고, 주방이 빨라지니 손님 경험이 좋아지는 구조. 고객이 ‘여기 음식이 빨리 나오네’라고 느끼는 순간, 그게 곧 브랜드 경험이 됩니다. 브랜드를 정리하면 브랜드가 선명해집니다.
2️⃣맥도날드 너, 나와!

이렇게 내부를 다진 칠리스가 다음으로 한 것은 정면 돌파였습니다. 물가 상승으로 패스트푸드 세트 가격이 $10을 넘어서던 시점, 칠리스는 맥도날드의 쿼터 파운더를 저격한 ‘빅 QP 버거’를 출시합니다. 맥도날드의 쿼터 파운더보다 크고, 가격은 저렴하게.

광고엔 맥도날드를 직접 겨냥한 이미지가 올라왔고, SNS에서는 “왜 맥도날드에 10달러를 쓰냐”는 질문을 공개적으로 던졌습니다. 단순한 도발이라기보다는, 이미 소비자들 머릿속에 있던 불만을 브랜드가 대신 말해준 셈이죠.

실제로 단품 가격만 놓고 보면 패스트푸드가 소폭 저렴하지만, 세트 기준으로 비교하면 칠리스에서 나초, 수프, 샐러드 같은 스타터까지 곁들여 퀘사디아나 파히타를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체감 가성비는 역전됩니다. “맥도날드 대신 칠리스 가자”는 선택이 실제 트래픽 데이터로 확인됐고, 칠리스는 그 흐름에 열심히 노를 저었죠.
3️⃣밈이 실적이 되는 방법

소셜 전략도 달랐습니다. CMO가 틴더 출신 마케터일 만큼 팀 자체가 Z세대 문법에 빠삭했는데요. 공식 인스타그램 계정에는 B급 밈이 올라오고, 맥도날드를 대놓고 저격하는 콘텐츠가 올라오는 게 짬(?)이 느껴집니다.

브랜드 계정이 이렇게 행동할 수 있는 건, 단순히 ‘젊게 보이자’는 의지가 아니라 제품과 가격에 대한 자신감이 뒷받침됐기 때문입니다. 할 말이 있어야 목소리를 낼 수 있으니까요.

특히 애피타이저 3종을 골라 먹는 ‘트리플 디퍼(Triple Dipper)’는 소셜 마케팅을 겨냥한 결정적인 한 방이었습니다. 치킨과 미니 버거, 치즈 스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핵심은 이 치즈 스틱입니다. 이 쭈우우우욱 늘어나는 치즈스틱의 비주얼 파괴력이 대단합니다.


트리플 디퍼의 먹방, ASMR, 밈 콘텐츠가 연달아 터지며 2024년에만 4,100만 개를 팔았다고 합니다. 동일 매장의 이전 대비 10~20% 상승하고, 성장세를 가속하는 데 한 몫했죠. 밈이 실적이 될 수 있다는 걸 숫자로 증명한 사례입니다.
결론: 노장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는다

칠리스를 찾는 사람들은 처음부터 고급 레스토랑을 기대하지 않습니다. 싸고, 적당히 맛있고, 양 푸짐하면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인플레이션 속에서 이 단순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어려워지고, 오래된 체인에 MZ세대를 다시 끌어들이는 것은 더 어려운 일입니다. 같은 상황에서 경쟁 체인들이 파산하는 동안, 칠리스는 내부를 다지고 외부를 향해 공격적으로 나아갔습니다.
자신들이 쌓아 올린 것을 유지하는 뚝심과 치고 나갈 타이밍과 틈새를 판단하는 노련함이, 50년 된 브랜드도 다시 힘차게 날아오르게 만듭니다.
오늘의 소마코 콕 📌
✔️ 칠리스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외부 환경을 위기가 아닌 포지셔닝의 기회로 바꿔, 가성비 브랜드로서의 정체성을 굳혔습니다.
✔️ 경쟁사 저격 마케팅은 도발이 아니라 공감으로 작동합니다. 칠리스는 소비자가 이미 느끼는 불만을 먼저 말하며,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습니다.
✔️ 칠리스는 Z세대 감도와 트리플 디퍼의 비주얼 파괴력을 결합한 소셜 전략으로 밈이 실제 매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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