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큰맘 먹고 뮤지컬 한 편을 예매하려다, 19만 원을 훌쩍 넘는 VIP석 가격에 놀라 조용히 창을 끈 경험 없으신가요?
시간과 돈, 치열한 티켓팅까지 넘어야 할 산이 많아 ‘비싸고 어려운 취미’로 불렸던 대극장 뮤지컬이 이제 우리 집 거실, ‘안방 1열’로 들어온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바로 국내 대표 뮤지컬 제작사 EMK컴퍼니가 ‘엘리자벳’, ‘마리앙투아네트’, ‘엑스칼리버’ 등 자사의 대표작 6편의 공연 실황 영상을 디즈니플러스를 통해 전격 공개했습니다.
연 매출 400억 원 규모의 국내 1위 제작사가, 자사의 핵심 수익원인 티켓 판매를 스스로 위협할 수도 있는 과감한 승부수를 던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뮤지컬은 왜 스스로 극장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까요?

1️⃣ 성장의 정체, 뮤지컬이 마주한 ‘골든타임’
국내 뮤지컬은 전체 공연시장의 40%를 차지하며 꾸준히 성장해왔지만, 이 성장세 뒤에는 고민이 숨어 있었습니다. 바로 ‘팬덤의 고령화’와 ‘신규 유입의 정체’입니다.
이른바 ‘회전문’ 현상입니다. 이미 뮤지컬에 입문한 기존 관객들이 같은 작품을 수십 차례 재관람하는 반복 소비 구조가 고착화되었습니다. 젊은 세대는? K팝이나 넷플릭스와 같은 OTT에 빠져 있죠. 문화 콘텐츠 소비의 핵심인 젊은 세대에게 뮤지컬은 여전히 비싼 티켓 앞에서 망설이는, 그야말로 진입장벽이 높은 존재였습니다.
BTS와 ‘오징어 게임’으로 대표되는 K-콘텐츠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동안, 유독 뮤지컬만이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갇혀 있었습니다. 아무리 뛰어난 작품이라도, 해외 팬들이 직접 한국을 찾지 않는 이상 그 매력을 알릴 방법이 막막했던 것입니다.

물론 희망적인 신호도 있었습니다. 최근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이 브로드웨이 무대에서 토니상 6관왕에 올라 세계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증명했죠. 이는 단순한 성공을 넘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강력한 증거이자, 더 늦기 전에 움직여야 한다는 ‘골든타임’의 신호탄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성공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물리적 한계는 존재했습니다. 브로드웨이 진출은 극소수 작품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었고, 대부분의 작품들은 여전히 국내 시장에 머물러야 했습니다. EMK는 바로 이 지점에서 결정적인 기회를 포착했습니다.

2️⃣ EMK 뮤지컬의 3가지 혁신 전략, ‘IP 제국’을 새로운 도전
그렇다면 EMK는 이러한 한계를 어떻게 돌파하려 할까요? 단순한 영상 공개를 넘어선 전략이 숨어 있습니다.
🔸’공연’에서 ‘IP’로의 대전환
가장 중요한 목표는 ‘IP(지식재산권)의 세계화’입니다. 기존의 공연은 특정 시간과 장소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회성 서비스에 가까웠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공연이라도 막이 내리면 사라지는 운명이었죠.
하지만 OTT 플랫폼에 오르는 순간, 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일회성 ‘공연’은 언제 어디서든 무한 반복해 볼 수 있는 영구적인 ‘콘텐츠 IP 자산’으로 진화합니다. 이는 ‘대극장 산업’에서 K팝 앨범이나 K드라마처럼 국경 없이 유통되는 ‘글로벌 수출 산업’으로 그 체급을 바꾸는 결정적 한 수입니다.
이제 지방에 사는 학생 팬도, 지구 반대편의 한류 팬도 한국의 배우의 폭발적인 가창력을 자막과 함께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잠재 관객을 코어 팬덤으로, 새로운 ‘입덕’의 문
EMK가 파고든 지점은 새로운 팬을 유입시키는 ‘문’을 만드는 것입니다. 공연에 큰 관심이 없던 사람이 큰 돈을 내고 극장을 찾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뮤지컬 시장이 코어 팬덤 중심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었던 이유입니다.
OTT의 저렴한 월 구독료는 공연에 대한 심리적, 경제적 장벽을 한 번에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입덕 치트키’입니다. ‘그 비싼 걸 왜 봐?’라고 생각하던 사람도 ‘커피 한두 잔 값인데 한번 볼까?’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되죠.
이렇게 ‘안방 1열’에서 작품의 매력을 맛본 잠재 관객 중 일부는, 머지않아 “이건 실제로 봐야 해!”라며 기꺼이 지갑을 여는 ‘코어 팬덤’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미래의 관객을 키워내는 가장 효율적인 ‘인큐베이터’가 되는 셈입니다.
🔸 ‘감’이 아닌 ‘데이터’로 미래를 설계
이번 파트너십의 가장 강력한 ‘히든카드’는 ‘글로벌 시청 데이터’의 확보입니다. 기존의 티켓 판매 데이터는 관객의 성별이나 연령대 정도를 파악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어떤 장면에서 감동했는지, 어떤 배우 때문에 N차 관람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죠.
하지만 플랫폼의 데이터는 다릅니다. 예를 들면 “일본에서는 ‘엘리자벳’이, 북미에서는 ‘웃는 남자’가 인기가 많다”, “특정 배우의 솔로 장면에서 반복 시청률이 급증한다”와 같은 구체적인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이 데이터는 단순한 시청률 분석을 넘어, 차기작의 캐스팅 조합, 해외 투어 도시 선정, 타겟 국가를 겨냥한 마케팅 등 미래의 성공 확률을 비약적으로 높이는 ‘전략 지도’가 됩니다.
결국 EMK는 공연을 ‘보는 것’에서 ‘경험하고, 확산시키고, 데이터로 학습하는’ 완전히 새로운 비즈니스로 재정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3️⃣ 도미노 효과, K-뮤지컬이 그릴 새로운 지도
EMK의 이번 움직임은 단순히 한 회사의 실험으로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업계 전반에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제작사들이 주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해피엔딩>이 이미 토니상 6관왕이라는 놀라운 성과로 그 가능성을 입증했듯, 이제는 더 많은 우리의 공연이 세계 무대로 진출하는 시대가 열릴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는 다른 공연예술 장르에도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연극, 클래식, 오페라까지 OTT 진출을 고려하게 될 테고, 결국 ‘공연예술의 OTT화’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의 출발점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EMK의 디즈니플러스 진출은 단순한 콘텐츠 유통을 넘어, 뮤지컬 산업 전체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될 지도 모릅니다.
이런 생각이 드실 수 있습니다. “그럼 OTT로 보면 굳이 비싼 돈 내고 극장에 갈 필요가 있을까?”라는 의문 말이죠. 하지만 넷플릭스가 영화관을 없애지 못했듯, OTT 뮤지컬은 극장 공연의 대체재가 아닌 ‘예고편이자 광고판’ 역할을 할 가능성이 더 큽니다.
안방에서 맛본 감동을 극장에서 직접 체험하고 싶어하는 ‘업그레이드’ 수요가 오히려 늘어날 수 있죠. 어쩌면 머지않아, 우리는 디즈니플러스에서 우리의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하는 오리지널 시리즈를 보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MK의 이번 선택은 단순히 공연 영상을 판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을 넘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산업의 미래를 재설계하는 대담한 첫걸음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비싼 취미’라는 껍질을 깨고, 무대의 현장성과 배우의 생생한 호흡이라는 독보적인 자산을 지닌 장르로서, OTT를 통해 그 매력을 전 세계로 확장시키고 있습니다.
OTT는 뮤지컬의 대체재가 아닌, 그 본질적 가치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는 다리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극장의 경계를 허문 이 도전이, 과연 K-뮤지컬을 세계 무대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아마도 우리 안방에서 만나는 무대에서 시작될 것입니다.
오늘의 소마코 콕📌
✔️ IP의 세계화: EMK 뮤지컬이 일회성 공연을 영구 IP 자산으로 전환해 글로벌 수출 산업으로 도약하며, K-콘텐츠 대열에 합류했습니다.
✔️ 팬덤의 확장: 높은 진입장벽을 허물어 잠재 관객을 코어 팬덤으로 전환시키는 ‘인큐베이터’ 역할로 시장 파이 확장을 노리고 있습니다.
✔️ 데이터 기반 성장: ‘감’이 아닌 글로벌 시청 ‘데이터’로 캐스팅부터 마케팅까지 과학적 의사결정 체계를 구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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