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네이티브가 다이어리를 펼치는 이유
디지털 네이티브인 Z세대의 책상은 아이패드나 전자기기로 가득할 것 같지만, 뜻밖에도 Z세대가 빠져있는 취미 트렌드 중 하나가 바로 ‘다이어리’입니다.

예전에는 스타벅스 다이어리가 ‘잇템’으로 기능한 정도지만, 이제는 다이어리를 사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고 꾸미는지 그 과정과 행위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취미 시장을 형성했죠.
‘다꾸러’들은 단순히 일정을 적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스티커와 마스킹 테이프로 페이지를 꾸미고, 그 과정을 영상으로 찍어 공유합니다.
모든 것이 스마트폰 터치 한 번으로 해결되는 세상에서, Z세대는 왜 다시 펜을 들고 사각거리는 종이 위에 기록을 남기려 할까요? 이 아날로그 회귀 현상 속에 숨겨진 소비 심리와 마케팅 인사이트를 분석해 봅니다.
1️⃣ 불안을 잠재우는 나만의 리추얼
디지털 네이티브들이 아날로그 기록에 빠져든 첫 번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온 세상이 디지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일상은 끊임없이 울리는 알람과 알고리즘에 의해 타의적으로 흐르기 쉽습니다. 하지만 다이어리를 펼치고 펜으로 꾹꾹 눌러쓰는 시간만큼은 온전히 내가 주도권을 쥐게 됩니다. 최근 유행하는 ‘갓생’ 트렌드와 맞물려, 자신의 하루를 계획하고 성취를 기록하는 행위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잠재우는 강력한 심리적 도구가 됩니다.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직접 써 내려가는 감각적인 경험이 곧 마음의 안정을 주는 리추얼이 된 것입니다. 이는 최근의 필사 유행과도 맥을 같이 합니다.

단순한 기록을 넘어 글씨를 쓰거나 스티커를 붙이는 행동 자체에 몰입하면서, 일정 기록용 외에도 필사용, 덕질용 등 다양한 용도의 다이어리를 여러 권 소장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즉, 다이어리는 이제 단순한 메모장이 아니라 복잡한 세상에서 나를 지키는 정서적 대피소로서 기능합니다.
2️⃣ 문구, ‘팬덤 이코노미’의 중심이 되다
하지만 다이어리 열풍을 단순히 개인적인 만족으로만 해석하기엔 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더 주목해야 할 지점은 문구 시장이 대형 브랜드 중심에서 개인 창작자(크리에이터) 중심의 ‘팬덤 이코노미’ 시장으로 재편되었다는 것입니다.

매년 ‘서울일러스트레이션페어(서일페)’나 ‘닷닷닷’ 같은 문구, 일러스트 행사에 수만 명의 인파가 몰리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사람들은 이제 기성품이 아닌 내가 좋아하는 작가의 감성이 담긴 스티커와 메모지를 소장하고 응원하기 위해 기꺼이 지갑을 엽니다.

트웬티와 같은 창작자 중개 플랫폼의 성장은 이러한 현상을 가속화했습니다. 문구류는 부피가 작고 배송이 용이하여 소규모 창작자도 쉽게 판매할 수 있고, 구매자 입장에서도 부담 없이 취향을 소비하며 작가와 밀접한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아이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작고 가벼운 물성’은 판매자와 구매자 사이를 끈끈하게 연결합니다. 소비자는 작가의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를 보며 제품 제작 과정에 공감하고, 구매한 제품으로 자신만의 다이어리를 꾸며 다시 SNS에 인증합니다. 이 과정에서 강력한 유대감과 팬심이 형성되며, 문구는 단순한 상품을 넘어 소통의 매개체가 됩니다.
3️⃣ 인사이트: ‘틈’을 주고 ‘관계’를 맺어라
이러한 문구 트렌드는 문구 업계뿐만 아니라 모든 브랜드 마케터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줍니다.

첫째, 완벽한 제품보다 소비자가 개입할 수 있는 ‘틈’을 만들어야 합니다. Z세대는 완성된 제품을 수동적으로 소비하기보다, 자신의 취향을 더해 ‘나만의 것’으로 완성하는 과정을 즐깁니다.
최근 인기있는 다이어리들이 대부분 속지에 장식이 없다는 점을 주목해볼만 합니다. 먼슬리, 위클리 포맷 등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최소한의 형식만 있고, 칸들도 큼직해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표지도 얼마든지 꾸밀 수 있게 되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자신만의 다이어리를 꾸미는 ‘다이어리 셋업’이 연말 연초의 인기 콘텐츠죠.

이렇게 브랜드는 기본이 되는 캔버스를 제공하고, 소비자가 스티커를 붙이든, 색칠을 하든, 조립을 하든 참여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둘 때 바이럴과 몰입도가 높아집니다.

둘째, 규모보다 밀도 있는 관계 형성에 집중해야 합니다. 거창한 캠페인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소박한 아날로그적 감성 한방울이 오히려 소비자와 브랜드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힙니다. 소규모 문구 창작자들이 팬들과 밀접하게 소통하며 팬덤을 키워나가는 방식처럼, 브랜드 역시 고객과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 같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오늘의 소마코 콕 📌
✔️ Z세대는 불안을 잠재우고 삶의 통제권을 되찾는 ‘리추얼’의 도구로 다이어리를 선택했습니다.
✔️ 문구 소비는 단순 구매를 넘어, 개인 창작자의 취향을 지지하고 소통하는 ‘팬덤 이코노미’로 진화했습니다.
✔️ 브랜드는 완벽한 제품보다는 소비자가 개입할 ‘빈틈’을 주고, 규모보다 밀도 높은 ‘관계’ 맺기에 집중해야 합니다.

EDITOR 원더제비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반짝이는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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