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애가 누구예요?” 요즘 이 질문에 아이돌 이름도, 남자친구 이야기도 아닌 답이 돌아오는 경우가 부쩍 늘었어요. “우리 엄마요.”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진심으로 엄마를 덕질하는 세대가 자기들끼리 부르는 이름까지 생겼습니다. 바로 ‘엄미새’예요. 낯선 말이죠. 그런데 이 한 단어가 지금 마케터들이 들여다봐야 할 소비 정서의 입구가 되고 있습니다.

1. ‘엄미새’, 엄마가 ‘최애’가 된 장면들
‘엄미새’는 “엄마에 미친 X”의 줄임말이에요. 욕처럼 들리지만 정반대입니다. 엄마와 유독 친하고 일상 대부분을 공유하는 사람을 애정 섞어 부르는 말이거든요. 언니가 좋으면 ‘언미새’, 동생이 좋으면 ‘동미새’로도 번져 갔고요. 한마디로 ‘최애’, ‘덕질’ 같은 팬덤 언어가 연예인을 떠나 가족 안으로 걸어 들어온 셈입니다.
그러니까 장면이 이렇게 바뀌었어요. 엄마와 딸이 와인바에 마주 앉고, 전시를 같이 보고, 팝업스토어 앞에 줄을 섭니다. 그리고 그 동반을 SNS에 올려 자랑하죠. 예전 같으면 ‘효도’라는 단어로 묶였을 일인데, 지금은 “엄마랑 데이트했다”는 콘텐츠가 됩니다. 아일릿 멤버 원희가 유튜브에서 스스로 “엄미새”라고 밝히고, ‘엄미새’ 행동을 보여 주는 한 릴스 영상이 97만 회를 넘기는 식으로 말이죠.

덕질의 강도를 보여 주는 밈도 있어요. 요즘 SNS에 번지는 ‘엄마를 동결건조하고 싶다’는 말입니다. 원래 동결건조는 식품의 수분을 얼려 빼내 오래 보관하는 방식인데, 여기서는 ‘지금 이 모습 그대로의 엄마를 오래 곁에 두고 싶다’는 마음을 뜻해요. 엄마가 늙는 게, 언젠가 곁을 떠나는 게 싫어서 지금 이 순간을 박제해 두고 싶다는 거죠. 우스개처럼 들려도 그 안엔 꽤 절절한 감정이 깔려 있습니다.

수치만 보면 ‘썸남·썸녀’ 같은 오래된 연애 단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규모예요. 반짝 밈이었다면 6개월을 못 갔을 텐데, 방송과 브랜드 캠페인까지 번졌으니 한 번 짚어 볼 만한 신호인 거죠. 그런데 여기서 진짜 질문이 생깁니다. 왜 하필 ‘엄마’이고, 왜 지금일까요.
2. 왜 하필 ‘엄마’이고, 왜 지금일까
엄마 덕질을 그냥 ‘요즘 애들 효심이 깊어졌다’로 읽으면, 사실 더 볼 게 없어요. 흐뭇한 미담으로 끝나니까요. 그런데 한 꺼풀 벗기면 꽤 또렷한 소비 심리가 깔려 있습니다.
먼저, 엄마는 ‘검증된 안전한 최애’예요. 연애도 결혼도, 새 관계를 맺는 데 드는 비용이 커진 세대에게 엄마는 거절당할 일도, 손절할 일도 없는 친밀함이거든요. 한 조사에서는 Z세대 상당수가 연애를 하지 않는 상태라는 결과도 나왔는데, 그 빈자리를 가장 가깝고 안정적인 관계가 채운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덕질의 본질이 안정적인 애착이라면, 엄마만 한 대상이 또 없는 셈이죠.
둘째, ‘엄마와 사이좋음’이 그 자체로 과시할 거리가 됐습니다. 좋은 취향, 다정한 관계, 같이 노는 가족 — 이건 SNS에서 꽤 매력적인 정체성 신호거든요. 모녀가 함께 찍은 셀카나 챌린지가 올라오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효도를 인증하는 게 아니라 ‘나라는 사람’을 보여 주는 콘텐츠인 거죠.
셋째, 부모 세대도 달라졌어요. 소비력과 취향을 갖춘 50대가 늘면서, 엄마가 ‘봉양해야 할 어른’이 아니라 ‘같이 놀 수 있는 또래’가 됐습니다. 와인바도 가고 전시도 같이 즐길 상대가 되니, 비로소 모녀 동반이라는 그림이 가능해진 거고요.
이 셋을 겹쳐 보면 그림이 분명해집니다. 안정적인 애착을 원하는 마음(왜 엄마인가)과 그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왜 SNS인가), 그리고 함께 놀 여유가 생긴 부모 세대(왜 지금인가)가 한 점에서 만난 거예요. 셋 중 하나만 빠졌어도 ‘엄미새’는 밈으로 끝났을 텐데, 세 박자가 맞아떨어지면서 소비로 이어진 셈이죠.
3. 브랜드는 ‘관계’를 어떻게 파는가
그래서 이미 올라탄 브랜드들은 무엇을 다르게 했을까요. 두 사례를 보면 공통점이 보입니다.
풀무원은 어버이날을 맞아 ‘스테이풀무원’이라는 1박 2일 프로그램을 엽니다. 눈에 띄는 건 타깃을 ‘가족’이 아니라 콕 집어 ‘엄마와 딸’로 좁혔다는 점이에요. 충북 괴산에서 두부를 같이 만들고, 싱잉볼 명상을 하고, 전문 작가가 모녀의 스냅을 찍어 줍니다. “머물러야 보이는 가치, 우리 오늘 풀무원해”라는 슬로건으로 올해 3년째 이어 가고 있고요. 효도 선물이 아니라 ‘엄마랑 같이 보낸 하루’를 파는 셈입니다.

찰스앤키스는 더 직접적이었어요. 어버이날 이벤트에서 “모든 엄미새들을 응원합니다”라며 신조어를 그대로 카피로 가져왔습니다. ‘효도하세요’가 아니라 ‘엄마 덕질하는 너, 멋지다’라고 말을 건 거죠. 의무를 자극하는 대신 놀이하는 정체성을 호명한 차이입니다.

‘한 사람’에게 파는 마케팅
- 구매 단위 — 1인
- 메시지 — “당신을 위한”
- 프레임 — 효도·봉양
- 타이밍 — 어버이날 시즌 한정
- 성과 지표 — 개인 구매
‘두 사람의 장면’을 파는 마케팅
- 구매 단위 — 2인 동반
- 메시지 — “둘이 함께”
- 프레임 — 같이 노는 친구·취향 공유
- 타이밍 — 상시
- 성과 지표 — SNS 동반 인증·재방문
여기서 멈추면 “그럼 우리도 모녀 굿즈 만들면 되나” 정도로 끝나요. 그건 따라 하기지 인사이트가 아니죠. 두 사례에서 꺼내야 할 건 더 일반적인 원칙입니다. 하나, 타깃을 ‘개인 1명’이 아니라 ‘관계, 즉 2인 1조’로 잡을 것. 1인용으로 짜인 메시지를 둘이 함께하는 경험으로 다시 설계하는 거예요. 둘, ‘효도·봉양’ 프레임을 버리고 ‘같이 노는 친구·취향 공유’로 갈아탈 것. 엄미새의 욕구는 의무가 아니라 동질감이니까요. 셋, 그 동반을 SNS에 자랑하고 싶게 만드는 장치를 심을 것. 둘이 같이 찍는 포토존이든, 2인 세트든 말이죠.
한 번 자기 브랜드에 대 보면 쉬워요. 우리 메시지는 ‘한 사람’에게 말을 걸고 있나요, 아니면 ‘두 사람이 함께할 장면’을 그리고 있나요. 광고 속 인물은 혼자인가요, 둘인가요. 결제 단위가 1인분으로 짜여 있다면, 그게 바로 관계 정서를 흘려보내는 지점입니다. 모녀가 아니어도 좋아요. 자매든, 친구든, 부녀든, ‘둘이 같이 와서 같이 자랑하고 싶은 관계’라면 같은 원리가 작동하거든요.
정리하면 이래요. 어버이날에만 모녀를 부르던 브랜드라면, 이제 ‘관계’ 자체를 1년 내내 쓸 수 있는 소비 단위로 보면 됩니다. 엄미새는 그 전환을 알려 주는 가장 친절한 신호고요.
📌 오늘의 소마코 콕
SOMAKO
Z세대에게 ‘가족’은 더 이상 사적인 영역이 아니라, 자랑하고 콘텐츠로 만드는 정체성 자산이 됐어요.
브랜드는 타깃을 ‘개인 1명’이 아니라 ‘관계, 모녀 2인 1조’로 잡을 때 이 정서에 올라탑니다.
‘효도·봉양’ 대신 ‘같이 노는 친구·취향 공유’ 프레임으로. 엄미새의 욕구는 의무가 아니라 동질감과 자랑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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