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캠페인 방향을 잡아야 하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을 때가 있습니다. 경쟁사도 다 벤치마킹해 봤고, 트렌드도 훑어봤는데 새로운 게 안 떠오를 때요. 그런 분들에게 꺼내보고 싶은 해외 캠페인 레퍼런스가 하나 있어요. 호주에서 나온 선크림 브랜드인데, 접근법 자체가 좀 달랐습니다.
1. 경쟁사 말고, ‘적’을 만들어본 적 있나요
보통 선크림 광고 하면 “자외선 차단”, “촉촉한 마무리” 같은 이야기를 하잖아요. 이 브랜드는 그런 걸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태양을 악당으로 만들었어요.
브랜드 이름은 Evil Ray. 호주의 독립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Pembleton이 기획부터 제조, 마케팅까지 직접 맡아서 만든 선크림입니다. 2025년 12월에 호주 전국에 출시됐고, 슬로건이 “The Official Enemy of the Sun”, 태양의 공식 적(敵)이에요.

패키지부터 범상치 않습니다. 호주 서프 브랜드 Mambo의 아이코닉 디자이너 Reg Mombassa가 그린 캐릭터가 전면에 박혀 있어요. 이빨을 드러낸 외눈박이 태양인데, 보는 순간 “이건 뭐지?” 싶은 비주얼이거든요. 짙은 퍼플에 형광 녹황색 조합까지, 선크림 코너에서 절대 묻히지 않을 디자인을 의도적으로 밀었습니다.
론칭 필름도 같은 방향이에요. 벌거벗은 아담과 이브가 태양과 손잡고 있는 장면으로 시작하는데, 내레이션이 “태양은 우리 등 뒤에서 독한 광선을 쏘느라 바쁘다”고 합니다. 과격하죠. 그런데 이 과격함이 단순한 유머가 아닌 이유가 있어요.

호주는 세계에서 피부암 발생률이 가장 높은 나라입니다. 국민 3명 중 2명이 평생 피부암 진단을 받고(Cancer Council NSW), 62%가 선크림을 정기적으로 바르지 않아요(CampaignBrief Australia). 태양을 악당으로 캐릭터화한 건 마케팅 과장이 아니라, 실제 위협을 눈에 보이게 만든 겁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눈여겨볼 점이 있어요. Evil Ray는 다른 선크림 브랜드를 겨냥하지 않았습니다. 경쟁사를 깎아내리는 대신, “태양”이라는 공동의 적을 세운 거예요.
이 패턴, 전에도 잘 먹힌 적이 있습니다. 애플은 ‘Think Different’에서 IBM이나 마이크로소프트 같은 기업용 컴퓨터 진영을 적으로 세웠고요. 나이키는 ‘Just Do It’에서 경쟁사가 아니라 안주하는 마음, 게으름 자체를 적으로 삼았어요. 경쟁사와 싸우면 시장을 나눌 뿐이지만, 카테고리 전체가 맞서야 할 적을 세우면 시장 자체가 커집니다. 그리고 그 적을 제일 먼저 지목한 브랜드가 리더 자리를 가져가고요.
Evil Ray가 한 것도 같은 구조예요. 태양이라는 적을 세우니 선크림 카테고리 전체의 긴급성이 올라가고, Evil Ray는 그 싸움의 아이콘이 됩니다.
2. 해외 캠페인 레퍼런스, 우리 브랜드에 적용한다면
이 사례를 보면서 떠오르는 질문이 하나 있어요. 우리 카테고리에서 적은 뭘까?
경쟁사를 겨냥하는 건 익숙한데, 카테고리 전체가 함께 맞서야 할 공동의 적을 찾는 건 조금 다른 차원의 기획이거든요.
Evil Ray에서 가져갈 게 있다면, 적은 경쟁사가 아니라 카테고리 전체의 위협이어야 한다는 거예요. 다이어트 식품이라면 적은 다른 다이어트 브랜드가 아니라 “귀찮음”일 수 있고, 보안 솔루션이라면 “해커”보다는 “안일함”이 적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적이 리얼해야 해요. Evil Ray의 태양이 먹히는 건, 호주에서 피부암이 정말로 심각한 위협이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만든 적은 설득력이 없어요.
마지막으로, 눈에 보이게 만드는 게 중요해요. “자외선은 위험하다”는 말보다 이빨을 드러낸 외눈박이 태양 한 장이 훨씬 강합니다. 추상적인 위협을 캐릭터로 바꿀 수 있느냐가 관건이에요.
이 해외 캠페인 레퍼런스가 보여주듯, 다음에 캠페인 방향을 잡을 때 “경쟁사 벤치마킹” 대신 “우리 카테고리의 적은 뭘까?”부터 시작해 보면 의외로 새로운 길이 보일지도 모릅니다.
📌 오늘의 소마코 콕
SOMAKO
경쟁사 대신 ‘적’을 세우면 카테고리 파이가 커진다 — 그리고 적을 먼저 지목한 브랜드가 리더가 된다.
Evil Ray는 태양이라는 실제 위협을 캐릭터로 시각화해서, 선크림 카테고리 전체의 긴급성을 끌어올렸다.
“우리 브랜드의 적은 뭘까?” — 캠페인 기획할 때 꺼내볼 만한 첫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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