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들을 흥분하게 하는 가을야구가 한창입니다. KIA가 준플레이오프에서 LG를 상대로 3연승을 거두며 플레이오프에 올라 삼성과 맞붙습니다. 지난 17일 준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재미있는 장면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홈런 두 방으로 승리를 이끈 김도영이 취재진에게 과자 봉지를 내밀며 이렇게 말했거든요. “드시고 싶은 분 계십니까? 저는 과자를 안 좋아해서 다 나누겠습니다.” 결승타를 친 대가로 받은 포테토칩 5박스였습니다. 시상식이 끝난 뒤의 이 한마디가 또 한 번 기사가 됐고요. 광고비를 한 푼 더 쓰지 않고 말이죠.

1. 타격감이라는 단어 하나
농심이 올해 KBO 포스트시즌에서 결승타를 친 선수에게 주는 상의 이름은 ‘오늘의 타격감상’입니다. 상금 100만 원에 포테토칩 5박스가 따라붙고요. 슬로건은 “야구도 감자칩도 타격감이다!”입니다. 방망이에 공이 맞을 때의 짜릿함과 감자칩을 씹을 때의 바삭함. 전혀 다른 두 경험이 ‘타격감’이라는 한 단어에서 겹칩니다.

인지과학에서는 서로 다른 두 개념을 겹쳐 하나의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내는 일을 ‘개념적 혼성(conceptual blending)’이라고 합니다. 이번 농심이 한 일이 바로 그것입니다. 새로운 것을 가져오기보다는 이미 있는 것들을 결합해서 새로운 기능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죠. 서로 다른 둘이 공통으로 이미 가지고 있던 속성을 절묘하게 연결해준 것입니다.
실제로 농심은 제품을 전혀 바꾸지 않았습니다. 새 맛을 내지도, 패키지를 손대지도 않았어요. 와일드카드전의 오스틴을 시작으로 김도영, 카스트로, 나성범이 차례로 상을 받았고, 시상대에 오른 대형 감자칩 봉지는 그 자체로 중계 화면에 남았습니다. KIA 마스코트 호걸이가 봉지에서 감자칩을 꺼내 가는 장면까지 포착됐고요. 연출로는 만들 수 없는 그림입니다.
2. 비워둔 자리로 초대하기
팔도는 다른 방식을 택했습니다. 올여름 비빔면 한정 패키지에 KBO 선수 프로필 카드를 넣었는데요. 여기서 그쳤다면 흔한 굿즈 끼워주기였을 겁니다. 팔도는 카드의 QR코드로 전용 페이지에 들어가 응원 구단을 고르고 카드를 등록하게 했고, 거기서 선발 라인업을 짜고 승패를 예측하게 했습니다. 실제 경기 결과로 점수가 매겨지고 순위가 실시간으로 공개되고요.

팔도의 사례를 보면 고객의 자리를 비워둔 무대를 마련하고 고객을 그곳으로 초대한 셈입니다. 그러면 고객은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어찌 보면 고객을 억지로 끌고 가는 대신 고객이 스스로 플레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죠.
결과는 참여자 25만 명, 카드 등록 332만 건입니다. 초기에는 접속자가 몰려 서버를 여러 차례 늘려야 했고요. 그런데 팔도는 별도의 CF를 집행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야구팬들이 알아서 퍼뜨린 겁니다.
3. 스스로 되게 하려면
제일 좋은 것은 스스로 되는 것입니다. 이런 효과는 우연히 나온 것이 아닐 겁니다. 고객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들의 욕구에 공감하는 노력 끝에 만들어진 결과일 것입니다.
모으는 일과 승부를 맞히는 일은 야구팬이 원래부터 하던 행동입니다. 중고거래 플랫폼을 들여다보면 이 점이 더 분명해집니다. 파는 글보다 “LG 주전급 선수들과 교환합니다” 같은 교환·나눔 글이 눈에 띄거든요. 돈을 벌려는 게 아니라 빠진 카드를 채우려는 사람들입니다. 브랜드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라 이미 돌아가고 있던 판이었던 셈이에요.
“고객이 우리 브랜드를 즐길 수 있게 하라.” 그러면 자연스럽게 우리 브랜드가 함께 빛이 납니다. 우리를 봐 달라고 먼저 말하는 대신, 고객이 즐길 자리를 만드는 것이 먼저라는 이야기입니다. 어떤 때는 말없이 옆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더 반짝일 때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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