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속촌에 오은영 선생님이 나타났다 | 고객이 배우가 될 때 콘텐츠는 저절로 퍼진다

한국민속촌 귀신 참교육 영상이 안 질리는 건 대본이 없기 때문이다. 민속촌은 캐릭터와 반응 규칙만 쥐고, 나머지 완성은 손님이 그 자리에서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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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인스타그램에서 ‘민속촌’을 검색하면 비슷한 영상이 줄줄이 나온다. 아이가 귀신 앞에서 울음을 터뜨리고, 귀신은 “말 안 들으면 잡아간다”며 다그친다. 아이는 겁먹은 얼굴로 연신 “네”라고 대답한다. 편식하지 않겠다고, 떼쓰지 않겠다고, 누나랑 싸우지 않겠다고. ‘누나랑 싸운 우리 금쪽이’ 같은 제목이 붙은 영상까지 있으니, 민속촌 오은영 선생님이 등장한 것이다. 온라인에서는 이 장면에 ‘귀신 참교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한국민속촌 인스타그램 캡쳐

귀신들을 무서워하며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진짜 귀신인 줄 알고 무서워하는 모습이 재미있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정신 건강에 문제는 없을까 걱정이 들기도 한다. 영상 속 귀신들은 한국민속촌 가을축제 ‘귀신사바 귀신놀이’에 등장하는 캐릭터 배우들이다. 처녀귀신과 구미호 같은 전통 귀신들이 민속촌 곳곳을 돌아다니며 관람객과 즉석에서 상황극을 펼친다.

1. 무대에 오른 관객들

흥미로운 건 이 영상들이 어떻게 만들어지는가다. 귀신이 먼저 아이의 잘못을 알 리 없다. 부모가 먼저 귀신에게 다가가 아이의 평소 행동을 이른다. 밥을 안 먹는다고, 말을 안 듣는다고. 그러면 귀신이 그 이야기를 받아 아이에게 약속을 받아낸다. 이 장면에는 배역이 셋이다. 귀신은 배우, 아이는 상대역, 부모는 대본을 쓰고 촬영까지 하는 작가 겸 감독이다.

이 민속촌의 이야기는 민속촌이라는 배경과 귀신이라는 배우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관객 스스로 스토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늘 같은 이야기도 아니라 소재 걱정도 할 필요가 없다. 가족마다 들고 오는 고민이 다르니, 바로바로 그 가족의 이야기에 맞는 맞춤형 스토리가 생성된다.

2. 내 이야기일 때 사람들은 움직인다

그래서 이 영상은 퍼질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에 관심이 별로 없다. 이게 내 이야기 같을 때 관심을 보이고 열광하게 된다. 어, 내 이야기인가? 싶을 때 공감을 끌어내는 것이다. 내 아이의 편식, 우리 집 남매의 다툼이 대사로 들어간 장면을 부모가 올리지 않을 이유가 없고, 그 영상을 본 다른 부모들은 “우리 애도 저런데” 하며 다음 주말 민속촌을 검색한다.

결과도 따라온다. 한 부모는 네 살 아이가 귀신을 만난 뒤 편식하지 않게 됐고, 유치원에서도 밥을 잘 먹는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사실 민속촌은 원래 이런 곳이었다. 조선 서민을 연기하는 아르바이트생들이 관람객에게 먼저 말을 거는 모습이 SNS에서 밈이 된 지 오래다. 건물이나 소품이 아니라, 관객에게 반응하는 ‘사람’이 민속촌의 가장 큰 자산이었던 셈이다.

3. 햄버거가 아니라 상황극을 사러 가는 식당

같은 구조로 세계적인 화제가 된 곳이 있다. 2021년 호주 시드니에서 문을 연 ‘카렌스 다이너(Karen’s Diner)’다. 이 식당은 손님이 돈을 내고 직원에게 무례한 대접을 받는 곳이다. 이름은 매장에서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을 비꼬는 인터넷 밈 ‘카렌’에서 따왔다. 무례한 손님 대신 무례한 직원이 등장하도록 판을 뒤집은 것이다. 직원들은 문을 열기 전 사흘 동안 손님 응대 상황극을 연습했다.

Karen's Diner

메뉴는 평범한 햄버거지만, 사람들이 찾는 건 햄버거가 아니라 그 상황극이었다. 포켓몬빵을 사면서 빵보다 그 안에 든 스티커에 관심을 갖는 것과 비슷하다. 다만 포켓몬빵의 스티커는 모으는 재미라면, 카렌스 다이너의 상황극은 직접 참여하는 재미라는 점이 다르다.

4. 손님이 찍은 영상이 광고를 이긴 이유

카렌스 다이너가 퍼진 방식도 민속촌과 꼭 닮았다. 직원이 무례하게 굴면 손님도 지지 않고 받아친다. 회사 스스로도 손님들이 받은 만큼 돌려준다고 말한다. 직원은 배우, 손님은 상대역, 휴대폰을 든 일행은 감독이 된다. 손님들이 직원과 주고받은 장면을 틱톡에 올리면서 공식 틱톡 팔로워는 140만 명을 넘었고, 2,200만 회 넘게 재생된 영상도 나왔다.

손님들이 찍어 올린 영상이 이토록 인기가 있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에 집중해 볼 만하다. 첫째, 연출되지 않은 진짜 반응이라는 것이다. 당황하고, 웃고, 받아치는 표정은 광고 모델이 흉내 낼 수 없다. 둘째, 보는 사람도 언제든 그 무대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영상을 보는 순간 ‘나라면 어떻게 받아칠까’를 떠올리게 되고, 그 상상이 방문으로 이어진다. 우리 민속촌 영상과 사진들이 지금 핫한 이유와도 맥락이 맞닿는다.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의 진짜 표정, 그리고 ‘우리 애도 데려가 볼까’ 하는 마음이다.

5. 모든 무대에는 명암이 있다

모든 것에는 명암이 있다. 카렌스 다이너에도 우리 민속촌의 귀신 이벤트에도 말이다. 즉흥극은 대본이 없어서 살아 있지만, 같은 이유로 선을 넘기 쉽다. 카렌스 다이너에서는 직원이 14세 소녀에게 모욕적인 말을 해 공식 사과를 해야 했고, 외모를 조롱하는 장면이 퍼지며 비판이 쏟아졌다. 반대로 손님이 ‘무례해도 되는 곳’이라는 허락을 넘어 인종차별, 성차별 발언을 하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결국 뉴질랜드 법인은 2023년 청산 절차를 밟았다.

민속촌의 ‘귀신 참교육’에도 비슷한 질문이 따라붙었다. 아이에게 공포심을 줘서 행동을 고치는 방식이 괜찮은지, 당장은 말을 잘 들어도 트라우마가 남지 않을지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민속촌이 기획한 건 ‘귀신놀이’였지만, 부모들은 그 무대를 ‘훈육’으로 쓰기 시작했다. 관객에게 배역을 내주는 순간, 극의 해석도 함께 내주게 된다.

6. 규칙이 있는 무대가 오래 간다

무대의 규칙이 있을 때 그 무대는 안전해진다. 규칙 없이 자유분방하게 발산할수록 더욱 자극적인 소재로 바이럴될 수는 있겠지만, 결국 그 무대는 어느 순간 막을 내려야 할지도 모른다. 어디까지가 놀이이고 어디부터가 상처인지, 배우는 언제 연기를 멈춰야 하는지. 즉흥극이 잘 굴러가는 건 대본이 없어서가 아니라, 대본 없이도 지켜지는 약속이 있어서다.

고객의 제품과 서비스를 널리 알려야 하는 우리들의 입장도 다르지 않다. 고객이 무대에 올라 함께 만든 장면은 어떤 광고보다 멀리 가고, 오래 기억된다. 그러니 고객을 객석에만 앉혀둘 이유는 없다. 다만 우리가 만든 무대의 규칙을 먼저 세우고, 무대가 커질수록 끝까지 지키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 고객은 지금 관객인가? 배우인가? 그리고 그 무대의 규칙은 누가 지키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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