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닥은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만들어 놓고도, 필름에 집착하다 무너졌다.” 코닥은 기술 변화를 따라잡지 못해 망한 회사로 언급되는 것을 많은 강의에서 듣곤 한다. 그런데 실제로 새 기술을 개발하고도 외면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더 큰 의미일 수 있다. 단순히 기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한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게다가 이 이야기를 조금 더 들여다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다른 장면이 하나 더 숨어 있다. 코닥은 뒤늦게나마 디지털카메라 시장에 뛰어들어, 미국에서 판매 1위까지 했던 회사다. 그렇다면 질문이 바뀐다. 1등까지 했는데, 왜 무너졌을까?
1. 알면서도 모른 척한 발명
시작은 1975년이다. 코닥의 스물네 살 엔지니어 스티브 새슨은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만들었다. 무게는 3.6kg이 넘었고, 0.01메가픽셀짜리 흑백 사진 한 장을 카세트테이프에 저장하는 데 23초가 걸렸다. 사진을 보려면 TV에 연결해야 했다. 새슨의 회고에 따르면 이 발명을 본 회사 사람들의 반응은 대략 이랬다. “귀엽네. 그런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마.”

세계 최초의 디지털카메라를 코닥이 개발했다는 사실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그런데 그렇게 무겁고 시간도 오래 걸리며 사진을 보는 것도 그렇게 복잡했다면 외면할 만도 했겠다 싶다. 그런데 아무한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은, 그들은 이미 이 기술의 가능성을 알아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지금 잘되는 사업에 방해가 될까 봐 두려웠기에 외면한 것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그 두려움에는 이유가 있었다. 당시 코닥은 미국 필름 시장의 약 90%, 카메라 시장의 약 85%를 차지한 절대 강자였다. 수익 구조도 명확했다. 카메라는 싸게 팔고, 필름과 인화지, 현상 약품으로 돈을 벌었다. 필름이 필요 없는 카메라는 이 구조를 스스로 무너뜨리는 물건이었다. 1981년에는 사내 시장조사 책임자가 대규모 연구 끝에 디지털 전환에 대비할 시간이 약 10년 남았다는 결론을 냈다. 답은 이미 회사 안에 있었다. 역시 몰랐던 게 아니었다.
2. 1등을 하고도 엉뚱한 곳으로
그래도 코닥은 결국 움직였다. 2000년대 초 ‘EasyShare’라는 디지털카메라 브랜드를 내놓았고, 2005년에는 미국 디지털카메라 시장에서 판매 대수 기준 1위에 올랐다. 회사 공시에도 남아 있는 사실이다. 늦었지만 따라잡았다. 여기까지만 보면 해피엔딩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디지털카메라는 필름처럼 돈이 되는 사업이 아니었다. 경쟁사가 넘쳐났고, 가격은 계속 떨어졌다. 많이 팔아도 남는 게 별로 없었고, 출시 초기에는 카메라를 팔수록 손해라는 분석까지 나왔다. 더 아쉬운 장면도 있다. 2005년 코닥은 찍은 사진을 와이파이로 바로 이메일 전송할 수 있는 카메라를 세계 최초로 내놓았다. 그러나 잘 팔리지 않았고, 코닥은 이 제품을 접었다. 그리고 몇 년 뒤, 사진을 찍고 바로 나누는 일은 스마트폰과 SNS의 몫이 되었다. 사람들이 원한 건 더 좋은 카메라가 아니라, 사진을 더 쉽게 나누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결국 코닥은 디지털로 ‘늦게’ 간 것이 아니라, 디지털 안에서도 ‘엉뚱한 곳’으로 갔다. 필름을 디지털카메라로 대체했지만, 생각의 틀은 그대로였다. “좋은 기계를 많이 팔아서 돈을 번다”는 필름 시대의 공식으로 디지털을 해석한 것이다. 2012년 1월, 코닥은 파산보호를 신청했고, 몇 주 뒤 카메라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밝혔다. 한 세기 넘게 이어진 필름·카메라 제국으로서의 코닥은 그렇게 무너졌다.
3. 피해 간 모순, 붙잡은 매몰비용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코닥 앞에 놓인 것은 하나의 모순이었다. 필름의 이익은 지켜야 하고, 동시에 디지털로도 가야 한다. 둘 다 잡으려면 어느 한쪽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했다. 하지만 코닥은 그 모순을 정면으로 풀지 않고, 피해 가는 길을 택했다. 디지털은 하되 필름 시대의 방식을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겉으로는 변화했지만, 속으로는 아무것도 버리지 않은 타협이었다.
그 타협 뒤에는 ‘이미 쏟아부은 것들’이 있었다. 거대한 필름 공장, 곳곳에 깔린 현상소 네트워크, 화학 기술에 평생을 바친 인력, 그리고 100년 가까이 회사를 키워온 성공 공식. 이 모든 것은 이미 들어간 비용, 즉 매몰비용이다. 되돌릴 수 없는 비용이니 앞으로의 결정에서는 빼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런데 사람도, 조직도 그렇게 하지 못한다. 이미 쓴 것이 아까워서, 그것을 살리는 방향으로 판단이 기운다. 매몰비용이 모순을 회피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도 늘 비슷한 선택을 한다. 지금 잘되는 사업과 새로 해야 할 사업이 부딪칠 때, 기존 고객과 새로운 고객의 요구가 엇갈릴 때, 우리는 둘 중 하나를 고르거나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하기보다 적당히 섞어서 넘어가는 쪽을 택한다. 그 판단의 밑바닥에는 대개 “지금까지 들인 게 얼마인데”라는 마음이 깔려 있다. 결정의 기준이 앞으로 얻을 것이 아니라 이미 쓴 것이 되는 순간, 모순은 풀리지 않고 미뤄질 뿐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질문
우리는 모순을 만나면 일단 회피하고 본다. 왜냐하면 늘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항상 이렇게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넣어서 질문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코닥이 잘못된 의사결정을 하던 매 순간 이런 질문을 해봤다면 어땠을까? “필름이 이렇게 잘 팔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필름 없는 카메라에 미래를 걸 수 있을까?” “공장과 현상소에 이미 그토록 많이 투자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 말이다. 그랬다면 코닥의 역사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흥미롭게도 코닥은 지금도 살아 있다. 파산에서 벗어난 뒤 인쇄와 첨단소재, 화학 중심의 전혀 다른 회사로 다시 섰고, 최근에는 실적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카메라와 필름이라는 과거를 내려놓고, 남은 기술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처음부터 다시 따져본 뒤에야 가능했던 일이다. 모순을 피하지 않고 마주했을 때, 비로소 다음 길이 열린 셈이다.
절대 코닥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이야기이다. 지금이 바로 우리가 초등학교 시절 자주 해봤던 짧은 글짓기를 해볼 때이다. “○○함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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