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중 광고 단가가 가장 비싼 무대는 단연 미국 슈퍼볼이다. 30초 광고 한 편에 수백억 원이 오가고, 기업들은 이 짧은 시간에 자기 제품이 얼마나 대단한지 외친다. 그런데 2026년 2월 슈퍼볼에서 이상한 광고가 나왔다. AI 어시스턴트 ‘클로드’를 만든 앤트로픽이 처음으로 슈퍼볼에 내보낸 광고였는데, 이 광고가 말하는 핵심은 “우리는 광고를 하지 않겠다”였다.

광고비가 그렇게 비싼 슈퍼볼에 광고를 하지 않는다고 광고를 한 전략은 정말 창의적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보통 자신이 가진 약점이 있을 때 굳이 그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 그런데 미안한 마음에 인정을 한 순간, 그 약점을 모르던 사람까지도 모두 알게 된다. 맥락이 비슷한지는 모르겠지만 광고가 없다는 광고도 마찬가지이다. 광고가 없는 것이 당연한 것인 줄 모르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알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런 광고를 했다는 사실 자체가 더 많은 이들에게 알려지게 되는 효과가 생겼다.
1. “광고를 실지 않을겁니다” — 클로드
클로드의 슈퍼볼 광고를 찾아서 보았다. 모두가 유사한 스토리다. 질문을 하면 답을 하고 나서 제품이나 서비스를 추천한다. 예를 들어 한 청년이 근육질 트레이너에게 식스팩을 빨리 만드는 법을 묻는다. 트레이너는 그럴듯하게 운동 조언을 해주다가, 뜬금없이 키 높이 깔창을 할인 코드와 함께 추천한다. 트레이너는 사실 광고를 붙인 AI 챗봇을 사람으로 표현한 것이다. 엄마와 대화가 잘 안 통한다는 고민을 털어놓는 또 다른 편도 마찬가지다. 그러면 질문을 한 사람은 벙찐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는 ‘Ads are coming to AI. But not to Claude’라는 메시지가 나오고, ‘Keep thinking’이라는 메시지가 Claude 로고와 함께 나온다.

모든 영역에서 AI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점점 AI를 보조 도구가 아니라 의사를 결정하는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질문마다 광고가 나온다면 더더욱 자율성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런 측면에서 이 광고에서 말하는 ‘Keep thinking’이라는 메시지가 더 울림이 있는 것 같다. “맞아, 우리가 점점 생각을 덜하고 있어. 더 생각해야겠어.”
웃기지만, 웃고 나면 묘하게 불편하다. 우리는 이미 이 경험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맛집 정보를 찾다가 협찬 글에 속아본 경험, 검색 결과 맨 위가 광고로 채워진 화면을 몇 번이고 넘겨본 경험. 맞아. 광고인 줄 모르고 보다가 ‘아, 광고였구나’ 하는 순간, 약간의 배신감을 느낀다. 그런데 이제는 건강, 인간관계, 일 같은 훨씬 내밀한 고민을 AI에게 털어놓는다. AI의 응답 결과에도 광고로 인한 편향성이 생긴다면, 우리는 또 ‘이것도 광고 아닌가’ 하고 판단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광고는 이 상상을 과장된 장면으로 보여주며, 광고에도 ‘때와 장소’가 있다고 말한다.
타이밍도 절묘했다. 당시 시장 1위인 ChatGPT가 막 광고 도입을 발표한 직후였다. 광고는 경쟁사 이름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겨냥한 대상은 분명했다. 실제로 오픈AI의 샘 올트먼 CEO는 광고를 보고 웃었다면서도, 자신들은 결코 그런 식으로 광고를 넣지 않을 것이라며 ‘부정직한 광고’라고 공개적으로 반박했다. 흥미로운 점은, 1위 기업의 대표가 직접 반응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 광고가 정확히 아픈 곳을 건드렸다는 증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광고가 있어선 안 될 곳을 다룬 광고, AI가 AI를 놀리는 광고, 시장 선두를 정면으로 건드린 도전자.
“It’s an ad about where ads shouldn’t exist, it’s an AI making fun of AI, a challenger that took on the market leader.”
– 출처 : Pelle Sjoenell, 칸 라이언즈 2026 필름 부문 심사위원장
이 캠페인은 결국 2026년 칸 라이언즈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부문인 필름 그랑프리를 받았다. 심사위원장은 이 광고를 두고, 광고가 있어선 안 될 곳을 다룬 광고이자 AI가 AI를 놀리는 광고, 시장 선두를 정면으로 건드린 도전자라고 평했다. 2026년 칸 라이언즈에서 수상한 것 또한 이 회사가 노린 효과가 아니었을까? 제대로 된 투자를 한 것이다.
그런데 ‘하지 않겠다’는 약속으로 존재감을 만든 브랜드는 클로드가 처음이 아니다.
2.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 — 파타고니아
2011년 11월, 미국 최대 쇼핑 대목인 블랙프라이데이에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뉴욕타임스에 전면 광고를 냈다. 커다란 자사 재킷 사진 위에 적힌 문구는 “이 재킷을 사지 마세요(Don’t Buy This Jacket)”였다. 모두가 “지금 사세요”를 외치는 날, 자기 제품을 사지 말라고 한 것이다.

광고는 이 재킷 한 벌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물과 에너지가 들고, 얼마나 많은 폐기물이 남는지를 담담하게 설명했다. 그리고 꼭 필요하지 않으면 사지 말고, 가진 옷을 고쳐 입고, 다시 쓰고, 재활용하자고 제안했다. 물건을 팔아야 사는 회사가 소비를 줄이자고 말한 셈이다. 이 광고는 지금까지도 마케팅 역사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광고 중 하나로 꼽힌다. 사람들은 “파타고니아는 진짜 환경을 생각하는 회사구나”라고 믿게 되었다. 매출을 포기할 수도 있는 말을 했기 때문에, 그 말이 진심으로 들린 것이다.
3. 브랜드가 없는 브랜드 — 무인양품
무인양품(MUJI)의 이름은 한자로 ‘無印良品’, 즉 ‘상표가 없는 좋은 물건’이라는 뜻이다. 1980년 일본의 한 슈퍼마켓 자체 상품으로 40개 품목과 함께 출발했다. 당시 소비 시장은 화려한 브랜드 로고와 과한 포장이 경쟁하던 시기였다. 무인양품은 그 반대로 갔다. 로고를 빼고, 포장을 단순하게 하고, 꼭 필요하지 않은 공정을 덜어냈다. 그리고 “이유가 있어서 싸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브랜드가 없음’은 곧 가장 강력한 브랜드가 되었다. 지금 우리는 로고가 하나도 없는 베이지색 수납함이나 무지 노트만 봐도 “무인양품 같다”고 말한다. 무언가를 빼는 것이 곧 정체성이 된 것이다.
4. 세 브랜드의 공통점
클로드, 파타고니아, 무인양품. 업종도, 시대도, 나라도 다르지만 세 브랜드에는 분명한 공통점이 있다.
첫째, 업계 모두가 당연하게 하는 것을 하지 않았다. AI 서비스에 광고를 붙이는 것, 대목에 판매를 독려하는 것, 상품에 브랜드 로고를 크게 박는 것. 모두 업계에서는 ‘원래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세 브랜드는 바로 그 당연함을 내려놓았다.
둘째, 손해를 감수했기에 믿어졌다. 광고 수익, 블랙프라이데이 매출, 로고가 주는 프리미엄. 하지 않겠다는 약속에는 늘 포기해야 하는 이익이 따른다. 사람들은 말보다 그 대가를 보고 진심을 판단한다.
셋째, ‘하지 않음’이 고객 편에 서 있다는 선언이 되었다. 광고 없는 답, 필요 없는 소비를 권하지 않는 태도, 로고 값을 받지 않는 가격. 모두 결국 “우리는 당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한다”는 메시지로 읽힌다.
늘 하던 대로 하는 것을 심리적 관성이라고 한다. 이 세 브랜드 모두 그 관성을 깨뜨리려는 의도적인 노력을 했다.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이 있다. 당장 손해일지는 모르나 언젠가는 더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당장의 손해를 감수하는 용기라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치밀한 전략이 없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이익만을 좇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는 순간 고객은 우리 브랜드의 충성고객이 된다. 진심은 통하는 법이니 말이다.
5. 우리가 내려놓을 수 있는 ‘당연한 것’은 무엇인가
모든 사례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치밀한 광고 전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존의 틀을 벗어나 고객의 마음을 얻으려는 시도 자체는 정말 높이 사야 하는 점인 듯하다.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브랜드는 기능을, 혜택을, 메시지를 더하려 한다. 과연 우리도 남들처럼 뭔가를 더하려고만 주구장창 애쓰고 있지는 않은지 꼭 살펴볼 때이다. 우리 업계에서 모두가 당연하게 하고 있지만 사실 고객은 내심 불편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안 함이 더 나은 함이 될 수 있음을 생각하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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