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윙윙거리는 형광등에 노란 벽에 축축한 카펫, 끝없는 빈 방. 깔끔하고 조용하지만 뭘 위한 공간인지 도저히 알 수 없는 곳. 이 사진을 보고 “대체 여기가 어디야?”하는 사람들도 많겠지만, 인터넷 괴담을 즐겨보는 사람이라면 단번에 알아챌 것입니다. 이곳은 ‘백룸’입니다.

백룸은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와 입소문을 탄 괴담입니다. 공포영화 제작 명가인 A24가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했고, 2026년 5월 29일에 개봉하자마자 북미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흥행가도를 달렸죠. 이 영화 감독의 나이가 무려 20세라는 것도 화제를 모았습니다. 별로 무서워 보이지도 않는 백룸이 도대체 왜 인기를 얻은 것이고, ‘인터넷 괴담’이란 대체 어떤 것이며, 어떻게 20세 감독이 메이저 영화로 단번에 데뷔를 할 수 있었던 걸까요? 백룸은 기존의 판에 박힌 공식으로는 예측도 분석도 할 수 없는, MZ 감성의 정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곳의 매력 속으로 들어가보죠.
1️⃣ 아무도 소유하지 않았기에, 모두가 만들었다

백룸의 시작은 2019년 미국의 익명 커뮤니티 게시판인 4chan에 올라온 사진 한 장이었습니다. 작성자도 익명이고, 저작권도 없습니다. 하지만 시작도 끝도 목적도 없는 이 묘한 공간의 기이한 느낌이 오히려 많은 사람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4chan 유저들은 직접 설정과 세계관을 덧붙이기 시작했습니다. 레벨별로 다른 백룸이 있다든가, 방이 무한정 생산된다든가, 괴이한 생명체가 나타난다든가 하는 이야기가 생겨났죠.

MZ세대는 콘텐츠를 수동적으로 즐기지 않습니다. 소재를 분석하고 새로운 ‘레이어’를 덧붙여 재창조하며, 각자의 설정을 가지고 토론하고 평가합니다. 아무도 소유하지 않은 세계관이었기에 오히려 모두가 공동 창작자가 될 수 있었죠.
2️⃣ 왜 하필 이 공간인가

백룸은 ‘리미널 스페이스’의 일종으로 설명됩니다. 목적지도 출발지도 아닌, 그 사이 어딘가의 공간. 새벽 4시 공항, 불 꺼진 쇼핑몰, 아무도 없는 수영장. 기존 공포물의 낡은 폐가나 폭력적 소재와는 다릅니다. 현대적이고 깔끔한데, 이상하게 마음이 불편하면서도 묘하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죠.

영화 개봉 후 X에서 “강변테크노마트 지하 1층이 백룸이다”란 포스트가 화제를 불러 일으켰는데, 실제로 백룸스러운 공간은 아주 드물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공간에서 느끼는 감각도 상당히 보편적이죠.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공간, 목적성을 잃고 텅 빈 채 남아있는 공간. 그 위화감이 공포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이 감각을 가장 설득력 있게 시각화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당시 16세인 케인 파슨스가 만든 유튜브 영상이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백룸은 본격적으로 메이저한 소재로 떠오릅니다. 첫번째 영상의 누적 뷰수는 무려 8,000만회에 이릅니다. 케인 파슨스는 백룸의 원조나 유일한 창작자는 아니지만, 그 세계관을 가장 잘 드러낸 대표가 된 것입니다.
3️⃣ A24가 20세 영화 감독을 선택한 이유
그렇게 커뮤니티 안에서 커져가던 백룸은, 한 편의 유튜브 영상을 계기로 더 큰 세계와 마주하게 됩니다. A24가 케인 파슨스에게 판권을 산 것이죠. (백룸 자체는 퍼블릭 도메인이지만, ‘연구소’ 설정과 VHS 필터 등 아날로그 분위기는 케인 파슨스의 창작으로 인정됩니다.)

그리고 A24는 케인 파슨스를 감독으로 선택했습니다. 블렌더를 독학으로 배운 16세의 소년이 20세가 되어 전 세계 개봉 영화의 감독이 되었다는 이 이야기는, 백룸 팬덤의 신뢰와 대중의 바이럴을 동시에 잡는 결정이었죠.
물론 전혀 경험이 없는 신인 감독의 기용은 큰 리스크를 포함하고 있지만, A24는 제임스 완과 같은 베테랑 감독을 제작자로 붙여 리스크를 줄였습니다. 신인 감독의 감수성은 살리되, 흥행 안전망은 확보한 구조입니다. 백룸의 매력과 기반이 그 세계관과 커뮤니티이며, 다른 무엇보다도 이를 중시해야 한다는 통찰력이 돋보입니다.
결론: 커뮤니티가 브랜드를 창조하는 시대
백룸은 처음부터 브랜드가 기획한 IP가 아니었습니다. 커뮤니티가 스스로 세계관을 쌓고, 팬덤을 키우고, 대표자를 만들어 냈습니다. A24는 그 결과물을 조심스럽게 떠서 메이저 영화 업계에 이식했을 뿐입니다. 브랜드가 팬덤을 만든 게 아니라, 팬덤이 브랜드를 불러들인 겁니다.

유명한 IP라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건 아닙니다. 인기 원작을 가져와 소재만 빌리고 대충 밀어붙이다 실패한 작품들을 우리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많이 알고 있습니다. <백룸>의 흥행은 이러한 함정을 피해 간 전략 덕분입니다.
MZ세대 콘텐츠의 생산과 소비를 다루는 방법을 알았던 거죠. 이들은 주어진 세계관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만들고 키워냅니다. 브랜드가 정교하게 반응을 통제하는 시대에서, 커뮤니티가 역동적으로 브랜드를 생성해 내고 그것이 대중에게 퍼져 나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백룸〉은 그 사실을 제대로 증명해 보였습니다.
오늘의 소마코 콕 📌
✔️ 백룸은 저작권도 원작자도 없는 익명의 인터넷 괴담이었지만, 바로 그 ‘열린 구조’ 덕분에 커뮤니티 전체가 공동 창작자가 되어 자생적으로 거대한 팬덤을 만들어냈습니다.
✔️ 백룸이 건드린 건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리미널 스페이스 — 목적을 잃은 텅 빈 공간이 주는 위화감으로, 바이럴되기 쉬운 보편적인 감성을 기반으로 합니다.
✔️ A24는 이 팬덤을 알아보고 원작의 DNA를 지키는 것을 우선시해 신인 감독을 기용하는 전략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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