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부활절을 앞둔 유럽에서 황당한 사건이 벌어졌다. 이탈리아 중부의 공장을 떠나 폴란드로 향하던 트럭 한 대가 통째로 사라진 것이다. 트럭에 실려 있던 것은 KitKat 초콜릿 413,793개, 무게로는 약 12톤. 새로 출시한 F1 테마 제품이었다. 초콜릿 회사에 부활절은 1년 중 가장 큰 대목이다. 하필 그 직전에 물량이 증발했으니, 재고도 매출도 타격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뉴스를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과연 트럭을 훔친 것일까? 초콜릿을 훔친 것일까?’였다.
보통의 기업이라면 어떻게 대응했을까? 아마 조용히 수습하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경찰에 신고하고, 보험 처리를 하고, 언론에는 짧고 건조한 입장문 정도만 낸다. 위기 커뮤니케이션의 오랜 정석은 “이야기를 키우지 마라”이다. 물류가 털렸다는 소식은 회사의 관리 능력에 대한 의문으로 번질 수 있고, 굳이 알려서 좋을 게 없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담당자라도 쉬쉬하는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제품의 이미지에 먹칠을 할 것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을 것이기에.
1. 먼저 말하고, 농담을 던지다
그런데 KitKat은 정반대로 움직였다. 도난 사실을 먼저 공개했다. 그리고 그 발표에 농담을 섞었다. KitKat의 오랜 슬로건은 “Have a break, have a KitKat”, 잠깐 쉬어가며 KitKat을 먹으라는 뜻이다. 회사 대변인은 우리는 늘 사람들에게 ‘브레이크’를 권해왔는데, 도둑들이 그 말을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 12톤의 초콜릿을 들고 ‘브레이크(탈출)’해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영어로 break에 ‘휴식’과 ‘탈출’이라는 뜻이 함께 있다는 점을 이용한 말장난이었다. 동시에 도난품이 비공식 경로로 유통될 수 있다는 경고도 잊지 않았다.

break에 그런 두 가지 뜻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break해야 break할 수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KitKat의 슬로건이 더욱더 잘 알려질 수 있을 것 같다. 좀 쉬라고 말할 때에도 ‘Have a KitKat!’이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2. 소비자를 탐정으로 만들다
진짜 승부수는 며칠 뒤에 나왔다. 4월 1일, KitKat은 ‘도난 KitKat 추적기’라는 웹 도구를 공개했다. 소비자가 자기가 산 KitKat 포장 뒷면의 8자리 배치 코드를 입력하면, 그 초콜릿이 도난당한 물량인지 확인할 수 있는 장치였다. 마침 만우절이라 “이것도 마케팅 장난 아니냐?”는 의심이 쏟아졌지만, KitKat은 안타깝게도 사실이라고 답했다. 그 순간부터 전 세계 사람들이 자기 손에 든 초콜릿을 뒤집어 보기 시작했다. 평범한 소비자가 ‘초콜릿 탐정’이 된 것이다.

소비자들을 초콜릿 탐정으로 만들 생각을 하다니 정말 놀랍다. 그 옛날 특별한 스티커를 찾기 위해서 먹지도 않을 과자를 자꾸 사던 기억이 떠오른다. 이 때문에 실제로 KitKat의 매출도 더 오르지 않았을까 궁금해진다.
결과는 놀라웠다. 추적기 이용은 220만 건을 넘었고, 브랜드에 대한 대화량은 508% 늘었다. 도미노피자, KFC, 라이언에어 등 115개가 넘는 브랜드가 자발적으로 이 농담에 가세했다. 부활절 기간 대화 점유율은 가장 가까운 경쟁사의 세 배에 가까웠다. 실질적인 성과도 있었다. 추적기를 통해 의심스러운 배치 코드 3건이 발견됐고, 그중 1건은 실제 경찰 수사의 단서가 되었다. 그리고 이 캠페인은 2026년 칸 라이언즈에서 PR 부문 그랑프리를 받았다. 위기를 다루는 분야에서 최고의 상을 받은 것이다. 참고로 도둑과 초콜릿은 아직 찾지 못했다.
추적기가 이 도난 사건을 해결하는 데에 실제로 활용되었다니 정말 놀랍다. 그런데 도둑을 잡진 못했군. 농담이 진담이 되는 순간이다. 역시 무엇이든 진심을 다하면 언젠가는 통하는 법이다.
3. 해로운 사건을 자원으로 쓰다
현재 트래커 사이트는 정지된 상태이다. 그동안의 고객들의 성원에 감사한다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공지가 떠있다.

도둑맞은 초콜릿은 분명 ‘해로운’ 사건이다. 손실이고, 망신이고, 대목을 앞둔 악재다. 그런데 KitKat은 이 해로운 사건을 버리거나 감추지 않고, 오히려 자원으로 썼다. 사건이 가진 황당함, 사람들의 호기심, 그리고 자기 브랜드의 슬로건까지 엮어서 1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에 가장 많은 관심을 끌어모았다. 해로운 것을 이롭게 바꾼 이 장면에서 우리가 가져올 수 있는 인사이트는 무엇일까?
첫째, 숨길 수 없는 일이라면 먼저 말하는 쪽이 이야기의 주인이 된다
트럭 한 대 분량의 초콜릿이 사라진 일은 어차피 오래 숨길 수 없다. 언젠가는 알려진다. 문제는 누가 먼저, 어떤 틀로 이야기하느냐다. 남이 먼저 꺼내면 “KitKat, 물류 관리 허술”이라는 제목이 붙는다. 내가 먼저 꺼내면 “KitKat, 초콜릿 도둑과 숨바꼭질”이라는 제목을 붙일 수 있다. 같은 사건이라도 누가 먼저 말하느냐에 따라 이야기의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다. 감추려는 순간 해로운 것은 끝까지 해로운 것으로 남는다. 드러내는 순간에야 비로소 다른 쓰임새를 찾을 기회가 생긴다.
둘째, 유머는 공감을 끌어내고, 자신 있는 자의 여유를 보여준다
위기 앞에서 농담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자칫 상황을 가볍게 여긴다는 비난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KitKat의 농담은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고, 웃음은 곧 공감이 되었다. “얼마나 맛있으면 트럭째 훔쳐 갔을까?”라는 반응이 쏟아졌다. 무엇보다 이 유머는 브랜드가 흔들리지 않는다는 신호였다. 12톤을 잃고도 농담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정도로는 무너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리고 그 유머가 하필 수십 년간 써온 자기 슬로건에서 나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평소에 쌓아둔 브랜드의 말투가 있었기에, 위기의 순간에도 억지스럽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렸다.
셋째, 진정성이 뒷받침될 때 그 여유는 인정받는다
만약 KitKat이 농담만 하고 끝냈다면 어땠을까? 처음엔 웃겼겠지만, 곧 “도둑맞은 걸로 홍보나 한다”는 비판이 따라왔을 것이다. 여유는 진지함이 받쳐줄 때만 여유로 인정받는다. KitKat의 추적기는 바로 그 진지함이었다. 웃기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도난품을 찾고 비공식 유통을 막으려는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은 실제 수사 단서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사람들은 KitKat의 농담을 즐기면서도, 이 회사가 문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유머가 마음을 열었다면, 진정성은 그 마음을 붙잡았다.
4. 우리 곁의 ‘해로운 것’은 무엇인가?
조직에는 늘 해로운 일이 생긴다. 실수, 사고, 불만, 예상치 못한 악재. 우리는 대부분 그것을 빨리 덮고 지나가려 한다. 하지만 KitKat의 사례는 다른 질문을 던진다. 이 해로운 일 안에 혹시 쓸 수 있는 자원은 없는가? 먼저 말할 용기, 웃으며 받아칠 여유, 그리고 그 여유를 증명할 진정성. 이 세 가지가 갖춰진다면, 지금 우리를 괴롭히는 그 일이 언젠가 우리를 가장 잘 설명하는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하나만 기억하자. ‘해로운 것도 자원이 될 수 있다.’ 우리도 해로움 추적기를 만들어 볼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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