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폼을 천 칸으로 쪼갠 축구팀 — 큰 문제를 작게 나누면 보이는 것들

메인 스폰서를 잃은 페루 클럽 무니는 유니폼을 1,000칸으로 쪼개 팔았습니다. 예산이 아니라 소속감을 판 팬덤 마케팅 사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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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수도 리마에는 데포르티보 무니시팔이라는 축구 클럽이 있다. 1부 리그에서 네 번이나 우승한 전통의 명문이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전 이야기다. 재정난 속에 강등을 거듭하며 하부 리그까지 내려갔고, 중계권 수입은 말라붙었다. 그리고 결정타가 날아왔다. 유니폼 가슴에 이름을 새기던 메인 스폰서가 떠난 것이다. 하부 리그로 떨어진 팀에 큰돈을 내겠다는 기업은 나타나지 않았다. 우리는 그들만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빼버리면 우리는 어쩌란 말인가? 매년 늘 큰돈을 대던 광고주가 갑자기 사라져버릴 수 있는 우리 상황과 다르지 않다.

데포르티보 무니시팔 유니폼

구단이 내놓은 해법은 의외였다. 메인 스폰서를 찾아 헤매는 대신, 유니폼 전체를 흑백 픽셀 같은 작은 칸 1,000개로 나눴다. 그리고 그 칸을 하나씩 팔았다. 한 칸의 가격은 약 60달러. 동네 빵집, 작은 식당, 미용실, 개인 사업자 누구나 살 수 있는 금액이었다. 구단의 상징인 붉은 사선과 엠블럼은 그대로 두고, 그 뒤를 천 개의 작은 이름이 채웠다. 2026년 1월에 시작된 이 캠페인은 성공을 거뒀고, 8월에 공개된 새 유니폼은 전 세계 언론에 소개되며 구단의 재정 위기 극복에 힘을 보탰다.

만약 우리도 비슷한 상황이었으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마도 스폰서 비용을 조금 줄여서라도 스폰서해 줄 기업을 찾아다니려 했을 것이다. 물건이 안 팔리면 가격을 내리려 하는 방식 말이다. 그런데 그들의 선택은 참으로 창의적이다. 스폰서의 가치를 나누어 합하면 원래의 것보다 더 크게 만드는 전략을 선택한 것이다.

1. 타협 대신 극복을 고민하다

이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단순히 아이디어가 기발해서가 아니다. 구단이 마주한 문제는 사실 하나의 모순이었다. 구단을 살리려면 큰돈이 필요하다. 그런데 큰돈을 낼 수 있는 곳은 없다. 큰 스폰서를 다시 찾아다니든, 규모를 줄여 버티든, 어느 쪽이든 모순은 풀리지 않고 둘 중 하나를 포기하는 타협이 될 뿐이다.

사실 더 이상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서 폐업한다는 이야기, 더 이상 구단을 운영하지 못한다는 이야기, 선수들에게 월급을 주지 못한다는 이야기 등은 우리가 심심치 않게 듣는 이야기이다. 이 사례가 특별한 이유는 그들은 그들이 처한 모순을 타협이 아니라 극복하려는 시도를 고민했다는 점 자체이다.

무니시팔은 다른 질문을 던졌다. “큰돈을 한 곳에서 받아야만 하는가?” 유니폼 광고는 원래 통째로 하나의 기업에 파는 것이라는 전제를 의심한 것이다. 유니폼이라는 큰 덩어리를 천 개의 작은 조각으로 나누자 상황이 바뀌었다. 한 기업이 수만 달러를 내야 하던 자리가, 천 곳이 수십 달러씩 나눠 내는 자리가 되었다. 큰돈을 낼 곳은 없었지만, 작은 돈을 낼 곳은 많았다. 쪼개는 순간, 진입 장벽은 낮아지고 참여할 수 있는 사람은 크게 늘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아끼던 구단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위기감과 함께, 구단이 그들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것이라는 소속감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그들은 스폰서십을 판 것이 아니라, 그들이 구단의 주인임을 인정해 주는 소속감을 판 것이다.

2. 쪼개면 조립과 분해가 가능해진다

쪼개기의 효과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하나의 큰 덩어리일 때는 조립도 분해도 불가능하다. 메인 스폰서 한 곳이 빠지면 유니폼 전체가 비어버린다. 하지만 천 개의 칸으로 나뉜 유니폼은 다르다. 몇 곳이 빠져도 전체가 무너지지 않는다. 빈칸은 다시 채우면 되고, 원하면 칸을 더 잘게 나누거나 몇 칸을 묶어 더 큰 자리로 팔 수도 있다. 한 곳에 운명을 맡기던 구조가, 필요에 따라 조립하고 분해할 수 있는 유연한 구조로 바뀐 것이다. 위험은 천 곳으로 나뉘었고, 구단의 선택지는 오히려 넓어졌다.

stock

문제의 모순을 해결하는 것을 중심으로 하는 방법론인 트리즈에서도 이러한 방법을 ‘분할(Segmentation)’이라는 발명원리로 설명한다. 쪼개면 분해와 조립이 용이해진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가 처한 모순을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바로 이 사례가 그렇게 모순을 해결한 것이다.

3. 밀리언 달러 홈페이지

이 장면은 20여 년 전의 한 사례를 떠올리게 한다. 2005년, 영국의 한 대학생이 학비를 마련할 방법을 고민하다 웹사이트 하나를 열었다. 가로세로 1,000픽셀, 모두 100만 개의 픽셀로 된 빈 페이지였다. 그는 이 픽셀을 1개에 1달러씩 팔았다. 단, 너무 작으면 보이지 않으니 가로세로 10픽셀, 즉 100픽셀 블록 단위로 100달러에 판매했다. 산 사람은 그 자리에 자기 로고나 이미지를 넣고 링크를 걸 수 있었다.

milliondollarhomepage.com

처음엔 장난 같았던 이 페이지는 입소문을 타며 빠르게 채워졌고, 불과 몇 달 만에 마지막 픽셀까지 팔려 100만 달러가 넘는 돈을 모았다. 웹페이지 하나를 통째로 광고판으로 팔았다면 그만한 돈을 낼 광고주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주 작게 쪼개자, 수많은 사람과 기업이 “나도 저기에 이름을 남기고 싶다”며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4. 두 사례의 공통점

페루의 축구 유니폼과 영국 대학생의 웹페이지. 시대도 분야도 다르지만 구조는 놀랍도록 닮았다.

첫째, 한 번에 팔기 어려운 큰 덩어리를 잘게 쪼갰다. 유니폼 전체, 웹페이지 전체는 너무 비싸서 사줄 사람이 없었다. 쪼개는 순간 ‘살 수 있는 크기’가 되었다.

둘째, 조각마다 이름을 남겼다. 산 사람은 단순히 돈을 낸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자신의 흔적을 남겼다. 조각이 작아도 “내가 여기 있다”는 의미는 작지 않다.

셋째, 참여 그 자체가 상품이 되었다. 사람들이 산 것은 광고 효과만이 아니었다. 화제의 현장에 함께한다는 경험, 그리고 그 이야기를 남에게 전할 수 있는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참여자 한 명 한 명이 스스로 홍보대사가 되었다.

5. 실무에서 따져봐야 할 것들

그렇다고 “쪼개면 된다”는 결론으로 끝내기엔 아쉽다. 이 방식을 우리 일에 적용하려면 몇 가지를 함께 따져봐야 한다.

먼저, 화제는 한 번이지만 재정은 매년이다. 처음의 신선함은 다음 해에는 반복되지 않는다. 천 곳이 내년에도 다시 칸을 살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 후원사끼리 연결해 주거나, 후원사에게만 주는 혜택을 꾸준히 설계하는 등 한 번의 이벤트를 관계로 바꾸는 장치가 필요하다.

다음으로, 쪼갠 만큼 관리할 것도 늘어난다. 스폰서 한 곳과 계약하는 것과 천 곳을 응대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신청, 결제, 디자인 반영, 문의 대응까지 작은 조각마다 손이 간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실무를 보는 분들이라면 ‘에이, 저걸 어떻게 다 관리하려고 해’라면서 현실을 모르는 해결책이라고 판단할지도 모르겠다. 이때 다시 질문을 던져봐야 한다. 이 모순은 또 어떻게 해결하지? 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조각이 작아도 의미는 살아 있어야 한다. 천 개 중 하나가 아무 의미 없는 점으로 느껴지는 순간 참여 동기는 사라진다. “천 명이 함께 구단을 살렸다”는 이야기가 있었기에 작은 칸도 가치가 있었다.

6. 우리는 무엇을 쪼개볼 것인가?

우리는 문제를 만나면 그 크기 그대로 해결하려고 한다. 큰 투자자를 찾고, 큰 계약을 따내고, 큰 프로젝트로 한 번에 풀려고 한다. 그런데 무니시팔과 밀리언 달러 홈페이지는 반대로 했다. 문제를 쪼갰고, 쪼개진 조각마다 새로운 해결의 길이 열렸다.

이 글에서 소개하는 두 사례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한 일이다. 그 이야기는 바로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이들의 지혜가 사용될 수 있다는 그 가능성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과연 여러분은 무엇을 쪼개볼 것인가? 그랬을 때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모순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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